▲ 차형석 사회부 차장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임단협)타결이라도 기대를 했는데…이제 계속 장사를 해야할 지 고민이네요.”

설 연휴 기간 울산 동구에서 만난 50대 자영업자는 한 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다니던 회사를 퇴직 후 2019년부터 동구지역에서 요식업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하면서도 버텨왔으나, 조선업 불황에 따른 동구지역 경기침체에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 여기에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 마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사가 진통끝에 마련한 2019~2020년 2년치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이 이달 초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조합원들은 물론 동구지역 상인·주민들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만일 이번 찬반투표에서 잠정합의안이 가결되었다면 최대 2600여억원이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 등 신종코로나 사태와 조선업 불황으로 위축된 지역 경기에도 모처럼 훈풍이 불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서 이 같은 기대감도 물거품이 됐다.

노사가 2019년 5월 임금협상 상견례 이후 1년9개월만에 도출한 잠정합의안이 예상보다 높은 58% 반대로 부결된 이유는 무얼까. 개표 전 지역사회에서는 오랜 교섭에 따른 피로도와 설 전 타결을 바라는 ‘샤이 조합원’들의 숨은 표 등으로 미뤄 가결이 되지 않을까라는 전망도 상존했다. 하지만 물적분할 관련 위로금 지급과 징계를 온전히 철회하지 못한데 대한 강성 현장조직 등을 중심으로 한 불만과 반대 여론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 결국 부결됐다는 게 노사 안팎의 중론이다.

노조 집행부에서도 설 연휴 전 내놓은 소식지를 통해 잠정합의안 부결에 대해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조합원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2차 합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노사가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조합원의 마음을 얻는데는 실패했고, 결국 이 회사 임직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쓸쓸하게 설 명절을 보내야 했다.

문제는 2차 합의안이 언제 마련될 지 모른다는 데 있다. 노사 모두 이번 합의안 도출을 위해 상당 부분 양보를 한 상태에서, 노사 어느 한 쪽의 양보와 결단 없이는 더 이상의 최적안이 나오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협상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위로금 지급과 완전한 징계 철회 문제 등은 사측 입장에선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교섭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에 투표 당일 발생한 근로자 사망사고 문제로 노사관계는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노조는 이번 중대재해건과 관련 최고경영자 처벌을 촉구하는 등 이슈화 하며, 잠정합의안 부결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 여론을 잠재우고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회사 역시 잠정합의안 부결에 이은 중대재해 발생으로 지역사회 및 업계에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까 마찬가지로 큰 부담이다.

현대중공업은 한국은 물론 세계의 조선업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현대중공업의 노사 관계가 몇 년째 탈출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지역사회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차형석 사회부 차장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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