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한글이 목숨이다’라고 했던 외솔 최현배선생의 고향이다. 외솔 선생에게 있어 한글사랑은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중심사상이었다. 외솔선생의 고향인 울산은 한글도시를 자처하면서 한글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세종대왕 또는 한글과 관련이 있는 의왕시, 세종시, 인천시, 청주시 등과 함께 한글을 지역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울산지역 자치단체가 사용하는 공공언어는 갈수록 외국어·외래어로 범벅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새로운 제품들이 동시에 쏟아져 들어오는데다 영어가 세계 공용 언어가 되다시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외래어 사용이 늘고는 있으나 행정기관이 일반 시민들이 널리 사용하는 새로운 시설이나 제도에까지 외래어도 아닌 아예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보격차를 초래하고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우려가 크다.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울산시의 정책에서는 울산형 뉴딜의 첫 사업이 ‘스마트 클린워터 정비’다. 상수도관 정비사업에서 상수도관 내부에 센스가 부착됐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명칭이라고 한다. 북구청 인근의 버스정류장에는 ‘스마트 셸터(Smart Shelter)’라는 표기가 있다. 그대로 번역하면 ‘지능형 대피소’라는 뜻인데, 자동정차 시스템·공기청정기·UV 에어커튼·CCTV·냉난방기·휴대전화 무선충전·와이파이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융합된 미래형 버스정류장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이 이달초 ‘복합기능쉼터’로 변경을 권유한 단어다. 동구에서는 작은 화단 조성 사업을 ‘에코 스페이스’ 사업으로,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창작공간을 ‘메이커 스페이스’ 사업으로 부른다. 중구의 ‘울산큰애기하우스’처럼 한글과 외국어를 섞은 우스꽝스러운 단어로 한글도시의 품격을 훼손한 경우도 있다.

외래어가 일반화되어 한글로 순화를 할 경우 더 이해도가 떨어지는 단어라면 모를까 읽기조차 버거운 외국어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기관이 그대로 사용해야 할 이유는 무언가. 전문가들끼리 주고받는 문서나 서류도 아니고 시민들이 많이 이용할수록 효용성이 높아지는 제도와 시설이 아니던가. 한글날에만 반짝 한글 사용을 장려하는 행정으로는 ‘외솔의 고향’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가 없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탄생일에 한글문화예술제를 개최하는 보여주기식 행사로는 ‘한글도시 울산’이라는 이름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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