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리(九英里)는 범서읍 10개 법정동리의 하나이다. 옛날 굴화현(울산)의 병영(兵營)이 있어 구영(舊營)이라 부르던 곳이다. 고종 31년(1894) 구영동(九永洞)과 점리(店里)로 나누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를 합하여 구영리(九英里)라 했다. 옛 병영이라는 뜻의 구영(舊營)이었다가 구영(九永)을 거쳐 구영(九英)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삼국시대 유물 산포지로 알려져 있으며, 범서중학교 부근과 구 못 부근 일대는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유적 등이 분포하고 있다.

 관곡마을은 구영리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구영초등학교 주변에는 아직 옛모습의 농가 몇 채가 조그만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이 관곡 또는 갓골이다.

 범서읍지(凡西邑誌)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수대(代)에 걸쳐 천석꾼으로 소문난 부잣집이 있는데, 그 부잣집이 위치한 마을의 형상이 마치 사람이 갓을 쓰고 앉아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마을의 이름을 갓관(冠)과 골곡(谷)의 글자를 합쳐 관곡 또는 갓골이라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천석꾼의 고가(古家)는 세월만큼이나 퇴락해 정침(正寢), 안 사랑채, 아래채, 바깥채 등은 모두 철거되고 단지 바깥사랑채만이 십여 년 전에 복원됐다. 집터 주위를 둘러보면 흔한 황토 흙 뿐이지만 유독 안채가 자리 잡았던 곳은 묘하게도 큰 따닥바위가 보통사람의 가슴높이로 불쑥 솟아 있다. 정침은 이 따닥바위를 기초로 하여 그 위에 지어졌고 따닥바위의 일부를 축담으로 삼아 밟고 올라가면 안방으로 들어가게 돼 있는데, 이 천석꾼의 안채 정침이 앉은 자리가 바로 지명대로 갓을 쓴 자리가 아닌가 싶다.

 관곡마을의 정기도 이 집안으로부터 이어져 맥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부자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위에 특유의 근면과 절약으로 부를 이루고 가세를 급격히 늘려 천석꾼이 되었다 한다. 후덕한 성품으로 향리의 친지와 우인, 그리고 객과 손들로부터 많은 칭송이 자자해 사람들이 공덕비를 세우고자 했으나 그 부자가 한사코 말려 결국 못하고 말았다 한다. 그 공덕비는 1990년 사랑채 복원공사 때에 주춧돌 옆에서 발견돼 현재의 제각(祭閣) 옆에 세워졌다.  갓골마을의 천석꾼은 땅 수 천 평을 희사하여 구영초등학교 건립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전한다. 그는 한낱 시골의 일개 부자에 불과하지만 오늘날 부자들이 어떻게 해야 뭇 세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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