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관진 울산 동부소방서 예방안전과장

지난 2012년 개봉한 설경구 주연의 영화 ‘타워’는 108층 초고층건축물에서 발생한 화재를 배경으로 제작된 생존 영화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맞아 인공눈을 뿌리기 위해 투입된 헬기가 난기류에 휘말려 건물에 충돌해 화재가 발생한 설정으로 대형화돼 가는 현대사회의 화재양상을 잘 나타냈다. 아울러 대형화재가 발생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의 심리를 캐릭터 별로 현실감 있게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눈여겨 볼 점은 화재가 일어난 다음 사람들이 대피하는 장면이다. 화재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건물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 대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앞에 있는 사람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통해 대피하려는 장면에서는 인간이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의 인간행동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을 따라 화재로부터 대피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고 엘리베이터로 몰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만약 영화처럼 화재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119에 신고부터 해야 한다고 떠올린 사람이 있을 것이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왜 사람들은 불이나면 119로 먼저 신고부터 하려는 것일까. 이유는 그동안의 소방 슬로건의 역사를 돌아보면 조금은 이해가 갈 수도 있다. 소방의 슬로건이 처음 도입된 1970년대에는 ‘불이나면 119에 신고먼저’라는 슬로건으로 오래 동안 홍보해왔다. 어린이 동요나 공익광고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이 나면 119에 신고부터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화재를 진압하려 하거나 119에 신고하려고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연기에 의한 사망률은 점점 높아졌다.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등록된 화재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전체의 60% 이상이 연기에 의한 질식사로 나타나고 있다. 화재시 발생하는 연기에는 일산화탄소가 포함돼 있는데 극히 미량의 흡입만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산화탄소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움직임을 억제시키고 중추신경의 기능을 저하시켜 두통, 현기증, 이명, 구토 등이 동반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불이 나면 대피부터 해야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연기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불나면 대피먼저’로 슬로건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당황하지 말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난층(1층)으로 갈 수 있는 비상구를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 비상구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면 침착하게 피난안내도를 찾아야한다. 피난로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대피하다가 막다른 곳에서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난안내도는 비상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의 위치와 건물 내 이동통로를 한눈에 보기 쉽게 만들어 놓은 하나의 지도 같은 것이다. 이 피난안내도를 활용해 대피한다면 보다 높은 확률로 생존이 가능하다. 다음으로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이동식장치는 사용을 금하고 계단과 같은 고정식 대피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아래층에서 연기가 올라오는데 무리하게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는 행동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옥상으로 대피 하거나 올라갈 수 없다면 창문 등을 열어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최근 발생하는 아파트 화재에서 계단으로 대피하지 못한 시민이 구조를 기다리다 소방대원이 설치한 에어매트리스에 몸을 던져 목숨을 건지는 경우가 많다. 대피가 곤란할 때는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은 생존 방법임을 증명하는 사례인 것이다.

안전의 기본은 습관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 낯선 곳에 가면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피난안내도를 유심히 보는 것과 같은 생활습관은 위기상황에서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안전한 습관을 길러보자.

김관진 울산 동부소방서 예방안전과장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