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 울산대 객원교수·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우리가 매일 듣고 부르는 서양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맨 먼저 회자되는 부분이 암브로시안 성가이다. 암브로시안 챈트(Ambrosian Chant)라 이름 지어진 연유는 그레고리안 성가라 부르는 것처럼 암브로시우스가 정리했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39~397)는 아버지가 로마의 고위관료였으나 정작 암브로시우스가 태어난 곳은 독일 트리어다.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로마에 있는 아버지 친구인 안치오 프르브스에게 가서 수사학을 공부하여 29세가 되던 368년에 변호사가 됐다. 그 후 370년에 북 이탈리아 밀라노의 집정관으로 일하던 중 밀라노 성당의 주교 후계자를 세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큰 문제를 잘 해결하여 아리우스파와 가톨릭 양쪽의 신임을 얻어 4년 후 밀라노 주교로 추대됐다. 그는 이때까지 세례조차 받지 않았었지만 탁월한 조정능력과 신앙적인 모습을 보여 주교에 추대된 것이다. 곧바로 세례도 받고 주교로서 훌륭한 설교를 많이 했다. 천주교 성자의 반열에 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인이 되기 전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아 신앙인이 됐다고 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찬미가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종교에서 특히 천주교에서는 모든 미사가 음악으로 시작해 음악으로 끝난다고 할만큼 중요한 찬미가를 정리한 공은 세계음악사에 길이 남아 있다.

이 시대의 음악은 반주 없이 독창이나 제창을 하는 것이 지금의 음악과 다른 점이다. 당시 도리안, 프리지안, 리디안, 믹소리디안 이렇게 4개의 선법을 정리하여 암브로시안 성가를 남겼다. 이 음악은 밀라노를 벗어나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지방까지 영향을 미쳤다. 200년 후에 그레고리안 성가가 이 암브로시안 성가의 영향을 받아 4개의 선법을 두 배로 늘려 도리안-히포도리안, 프리지안-히포프리지안, 리디안-히포리디안, 믹소리디안-히포믹소리디안으로 재정리됐다. 이러니 음악의 역사를 공부하려면 암브로시안 성가를 찾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암브로시우스가 음악적 시조뿐 아니라 천주교 성인이 되어 천주교 역사에 길이 추앙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셈이다. 구천 울산대 객원교수·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추천음악=가톨릭 이탈리아 암브로시안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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