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만으로 성공했다는 오만함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 불러와
성공·실패에 대한 태도 바뀌어야

▲ 이상엽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우리 사회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지배하고 있다. 능력주의 사회는 ‘당신이 노력해 능력을 보이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것이고, 당신은 얼마든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것은 당신이 하기 나름이고, 당신의 운명은 당신 손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능력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교육, 일자리, 공직 등에서 동등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동등한 기회를 누리고 있는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2020년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 신입생 중 고소득층(소득분위 9분위/월 949만원 이상) 비율은 55.1%로 나타났다. 또한 2020년 전국 의대 신입생 중 52.4%, 로스쿨(법전원) 신입생 중 51.4%가 고소득층(9분위 이상) 자녀다. 이처럼 입시에 부모의 재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학생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생각은 몽상에 불과하다. 2018년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교육과 입시가 공정할 것이란 믿음을 철저히 깨뜨려주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이야기는 까마득한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최근에 출간된 <공정하다는 착각>(2020)에서 ‘능력대로 받는다’는 능력주의는 실제로 전혀 공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능력주의는 승자와 패자 사이의 간극을 넓혀 양극화를 고착화시킬 것이고, 특히 승자의 오만은 우리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갈 뿐이다.

능력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가차 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경쟁에서 이긴 승자는 자신의 성공이 노력에 대한 대가이며 능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내가 다 잘나서 성공한 것’이고, ‘얻을 만한 걸 얻었을 뿐’이라는 승자의 오만에 빠지기 쉽다. ‘승자는 승리의 대가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다’고, ‘성공한 사람은 성공할만하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서 오만한 승자는 자신보다 덜 성공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 반면에 패자는 ‘내가 다 못난 탓’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에 좌절하는 동시에, 승자의 오만에 증오심을 품는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결속의 방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승자와 패자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능력주의 사회의 폐해는 극복될 수 있을까?

샌델은 우리가 ‘성공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성공은 나의 좋은 운 때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노력만 가지고서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타고난 좋은 재능은 정말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내가 내 능력에 보상을 주는 사회에 산다는 것도 행운이지 않은가. 최고 능력의 축구선수라도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회에선 어떤 대우도 받지 못할 것이다. 나의 성공이 행운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나는 ‘나의 성공을 나 혼자 다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공에는 행운이 깃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만한 승자는 자신 이외의 어떤 것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감사와 겸손의 마음을 갖기 어렵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감성이 부족하다. 만약 그가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자신의 성공을 남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동료’나 ‘공동체’ 덕분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늘 감사하고 겸손할 것이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오만에 빠진 승자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상처 받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만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존중받길 원하고, 자신들도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길 원한다. 우리가 성공과 실패에 대한 태도를 바꿀 때, 능력주의에 의해 해체된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묶으며 ‘공동선(common good)’을 추구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다.

이상엽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