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신이 창조하지 않은 제4의 인종인 메스티조들이 인구 비율 면에서 다수를 이룬다. 알다시피 메스티조는 백인과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오 사이의 혼혈이다.
 이 두 집단을 비교해 보는 것은 적잖이 재미나는 일이다. 인디오는 우리처럼 엉덩이에 푸른 반점을 갖고 태어나는 몽고족이기도 하다. 그들은 좀처럼 변화를 싫어한다. 그들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이유는 바로 다른 것에 대한 불안과 경계심 때문이다.
 그들에겐 같은 것은 평화와 안정을 그리고 다른 것은 전쟁과 불안을 의미한다. 그래서 변함 없는 자연을 그토록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이에 비해 메스티조들에겐 다른 것이 본래의 것이요 같은 것은 예외가 된다. 심지어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도 그 피부색을 달리 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에겐 원주민인 인디오와 달리 다르다는 것이 숙명이요 자연이다. 더욱이 남이 자기와 다르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배분적 정의에서의 평등, 즉 실질적 평등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함을 의미하며 그리고 그 차별이 합리적일 때 용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일민족인 우리가 토론에 약한 것도 다른 것에 대한 필요 이상의 경계심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계심은 토론자를 종종 흑백논리에 빠트린다. 토론이란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전제로 하는 것.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토론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남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마음으로 토론에 임하는 것은 말싸움을 걸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린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하다. 아는 외국 여자 하나가 "왜 한국 여자들은 루이뷔통 가방만을 고집하느냐"고 물었다. 설명을 한다고 했지만 나의 짧은 영어 때문인지 그녀는 커피잔을 다 비울 때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기에 대부분 그 가방들이 가짜라는 말은 차마 하지도 못했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남이 갖고 있으면 오히려 다른 것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패거리 정치, 일류병, 간판주의 이 모든 것이 몰개성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비록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개개인은 각자 다른 성격과 적성을 타고 난다. "저마다의 소질의 개발"을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사회 풍토가 아쉽다. 우린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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