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재 가장 흡인력 센 문화의 한 장르다. 하지만 지방에서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락해 문화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정헌 교수의 극장가 산책〉은 이런 반성에서 시작한다. 매주 금요일 이정헌 교수는 울산의 극장가와 상영중인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로 젊은층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려 한다. -편집자 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멀티플렉스라 불리는 L극장에 갔다. 전 세계 동시 개봉(Global release)이라는 영화산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반지〉 시리즈가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다른 영화들을 "절대" 압도하고 있었다.
 울산 사람들의 무의식속에서 오랫동안 "시내"라 불렸던, 그리고 여전히 그리 불렸으면 좋을 그곳에 위치한 T, C, S극장은 이미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돼 누구도 감히 추억하지 않는 세월에 봉인되었다.
 너무도 여유로웠던 시절의 월요일 오전, 조조할인에도 불구하고 텅 빈 객석과 그 덕분에 누렸던 나만의 시사회를 가진 뒤의 포만감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기에 L극장의 "절대 반지"를 위해 길게 늘어선 열혈남녀들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멀티플렉스는 영화산업의 지형도를 완전히 새로 그렸고 영화감상 스타일도 바꿔 놓았다. 이것은 90년대 이후 디지털과 관련된 테크놀러지의 진보와 함께 세계 영화산업의 매우 중요한 변화중 하나다.
 영화산업에 있어서 배급은 관객과 영화가 만나는 최종적인 지점이다. 최근 한국영화산업도 "산업"이라는 수식어를 달면서 배급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강력한 배급 라인(한국의 경우 시네마 서비스와 CJ 엔터테인먼트 등)을 잡지 못하고 스크린 확보에 실패하면 그 길로 막을 내린다. 일단 300~400개의 스크린을 확보해 최소 일주일이면 초반 "끗발" 만사형통인 것이다.
 이것이 "배급의 힘"이다. 영화는 일단은 극장에 걸려야 돈을 회수(투자비용과 수익금)하는 것이고, 다음은 영화가 파생시키는 음반, 캐릭터 상품, 비디오나 DVD 판권,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 판권 등으로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이다.
 배급의 시장원리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울산의 L극장은 다른 대도시의 멀티플렉스와는 달리 독과점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자본주의에서 독과점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이러한 비상식이 울산 극장계의 현실이라면 이번에 비상식적인 제안을 하나 하려한다.
 9개관 중 1개관만이라도 한 달에 일주일 그것도 무리라면 3일만이라도 다양하고 질 높은 "작가 혹은 예술 영화"나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어떨까. 울산 사람도 좋은 영화를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울산에서 볼 권리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L극장이 그런 좋은 영화들을 상영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세상을 반쯤은 의무감으로 산다는 말도 있던데". 이정헌 영산대 영화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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