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주)가 지금은 안정성 측면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1위 기업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가 1997년 합성수지 공장장으로 있을 때였죠. 공정에 트러블이 자주 발생해 이를 줄여볼까 하는 욕심에 대산에 있는 모 유화공장에 벤치마킹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장에서 벤치마킹을 하려면 서로가 줄 것이 있어야 하는데 SK(주)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거부를 하더군요. 지금이야 여담으로 하지만 진짜 그 때는 자존심도 상하고 죽을 맛이었지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며 잘 대처해 현재의 SK(주)를 만들어온 직원 모두에게 전우애를 느낄 정도입니다. 아울러 장이로서의 자부심도 느끼게 됩니다."
 지난 1월 SK(주) 울산Complex의 업무를 총괄하는 신임 생산부문장의 자리에 오른 방엽성(56) 전무는 자신의 이름 한자풀이를 "쇠조각을 만든다"(쇠조각 엽(쇠금변에 葉), 이룰 성(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공장(현장)에 근무할 운명을 타고 났다는 말이다. 장이로서의 기질과 자부심도 묻어난다.
 방 전무는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74년1월 SK(주)에 입사하자마자 공장 근무를 자원했다. 교대근무부터 시작한 그는 이후 생산에서 27년, 설비·지원에서 3년 등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단 한차례도 떠난 적이 없었다. 스스로 "플래어스텍(안전시설) 밑에 뼈를 묻겠다"고 할 정도로 현장근무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런 만큼 최근의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지금 이 정도 먹고 살게 된 것은 제조업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제조업이 국가 및 지역경제를 이끌어갈 원동력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확보가 핵심인데 현재와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정말로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비전있는 국가는 건전한 엔지니어들이 대접받는 시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이 지론이다. 개인적으론 이공대 출신으로서 불이익을 받은 기억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의식전환을 촉구했다.
 "오히려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주 구성원으로서 현재의 발전을 이끌어 왔으며 그만큼 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국내 최대·최고의 에너지·화학업체인 SK(주)의 공장 책임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증명해주는 것이죠."
 그러나 그의 현재의 위치는 누가 가져다 준 것이 아니다. 그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하루는 항상 회사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밤새 공정 이상여부를 확인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 출근과 동시에 현장의 컨트롤룸 1~2곳을 돌며 직원들과 악수하며 애로사항도 직접 챙기는 성실함과 업무에 대한 애정에 있다.
 "직원들이 "방오퍼레이터 또는 방총(반장)"이라고 부르더군요.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꼼꼼하게 챙긴 덕분에 안정성 1위의 공장을 만들어냈다는 의미가 되겠지만 일일이 챙기고 간섭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겠지요. 아무튼 직원들이 저를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이젠 생산부문장이 됐으니까 위치에 맞게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는 생산부문장이 된 후 처음 가진 회의에서 "칭찬경영"으로 "신바람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게 그의 회사 운영방침을 밝히고 간부들에게 화합과 관심, 배려와 참여라는 4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구성원은 물론 직장, 모두가 윈-윈하기 위해서는 화합으로 한마음이 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사들의 관심과 배려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 말에는 직원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숨어 있었다.
 "지난해 글로벌사태와 노사문제 등으로 구성원 모두가 어느해보다 어려운 한해였으나 슬기롭게 극복해 왔습니다. 올해초 설 연휴에 최태원 회장이 울산공장을 이례적으로 방문한 것도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고 공장중시 경영의 일단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회사와 구성원 모두가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방 전무는 직원들에게 좀 더 넓은 시각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주문하기도 했다.
 "어느 부분적인 것보다는 항상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면서 자기가 해야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 속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스트레스도 쌓아둘 여력이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려고 노력하는게 생활신조입니다. 정면돌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오히려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와 함께 울산대공원을 속보로 걷는 것도 기분을 푸는 한 방법입니다"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부인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빼놓지 않았다.
 "아내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얘기인데 지난 30년동안 공장밖에 모르는 사람을 만나 많이도 고생했습니다. 물론 잘 성장해준 두 아이도 그렇고요. 30년 직장생활중 20년은 회사에 있을 정도로 회사가 일터였고 쉼터였습니다. 가끔은 이벤트도 마련하고 있는데 고마움에 비하겠습니까."
 그는 울산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출신지는 부산이지만 입사 이후 30년 동안 울산을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울산시민들이 SK에 보내준 애정에 대해서도 남다른 고마움을 갖고 있다.
 "앞으로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울산은 내 고향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최고기업의 현장책임자가 된 것도 울산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속에 울산시민들이 보여준 SK(주)에 대한 애정과 성원에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기업의 책임을 통감하는 계기도 됐고요.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지역환원 사업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신형욱기자 shin 사진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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