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파스님, 옻칠과 나전칠기로
법고창신 신비한 볼거리 탄생
암각화 보존 논란 통렬한 풍자

▲ 정명숙 논설실장

벌써 한 달 전이다. 지난 4월24일,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 앞마당에서 물속에 드러누운 반구대암각화(국보 285호)와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모형이 공개됐다.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의 작품이다. 마당 한가운데 작은 수영장과 같은 수조 2개를 만들어 그 곳에 각각 암각화와 각석을 푹 담갔다. 크기는 암각화가 430×786㎝이고, 각석이 330×930㎝이다. 거의 실물크기 그대로다.

하늘을 보고 물속에 드러누운 2기의 바위그림.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으랴. 그 자체로 신비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대책 없는 문화재 정책에 내리치는 죽비이기도 하다.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두고 십수년째 논란만 거듭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정부와 울산시를 이 보다 더 신랄하게 꼬집을 수가 있을까. 통렬한 풍자다. 가슴 한편이 따갑기도 하지만 수십년 체증이 내려가듯 시원함도 있다.

오래 전부터 성파 스님은 문화예술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작업으로 지역문화를 이끌고 있다.

수행의 한 방법으로 도자기를 굽다가 20년여에 걸쳐 팔만대장경을 16만개의 도판에 옮겨 담아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 2011년이다. 우리 전통에 대한 관심은 옹기와 된장, 쪽빛을 재연한 천연염색, 야생화 재배로 이어졌고, 드디어 옻칠로 옮겨졌다. 전통불화 152점을 옻칠 작업으로 되살려내는 한편 마음속 깊이 “인류 문화사에서 최고 원조”인 암각화 재연을 시작했다. 마침내 3년 만에 옻칠 암각화를 완성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손길은 닿는 곳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옻칠 암각화는 제작기법이 독특하다. 옻칠을 한 삼베가 바탕이다. 삼베에 옻칠을 하고 말린 다음 그 위에 다시 삼베를 붙이고 옻칠을 하는 작업을 일곱 번 이상 반복했다. 삼베에 옻칠을 해서 겹으로 붙이면 도자기처럼 단단해지고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고 한다. 썩지도 않고 접착력이 강해서 물에 넣고 끓여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 위에 전복껍질을 사용해 나전칠기 기법으로 그림을 새겨 넣었다. 반구대암각화는 동물 문양마다 색깔을 넣었다. 율동감이 살아나면서 화려하다. 천전리각석은 자개 색깔 그대로 은은하다. 다만 대곡천 물가에서만 봐왔던 울산의 바위그림들이 굽이치는 능선을 한참이나 내려다봐야 하는 양산의 산중턱 절집 마당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다못해 서럽다.

사람들은 이제 암각화를 보러 통도사에 가게 될 지도 모른다. 암각화와 관련한 문화상품 가운데 이보다 더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옻칠암각화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야외수중작품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모든 것은 물에서 났고,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반구대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문제로 논란이 많은데, 통째로 물에 담겨 있는 걸 한번 봐라.” 성파스님 특유의 독창성과 절묘한 해학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통을 계승하는 옻칠과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덤이다. 그야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아닌가.

바위그림이 발견된 지 5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가 한 일은 1973년 천전리각석을 국보 147호로, 1995년 반구대암각화를 국보 285호로 지정한 것이 전부다. 우리나라에 두기 밖에 없는 바위그림 국보를 모두 갖고 있는 울산시가 한 일도 2008년 5월30일 암각화박물관 개관이 전부다. 하지만 그 마저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매력 있는 문화공간이 되기는 역부족이다. 정부도, 울산시도, 십수년동안 아무 소득 없는 ‘물 논란’만 거듭했을 뿐, 법고창신의 볼거리는 계획조차 해본 일이 없다. 어느새 반구대암각화는 풍화작용으로 훼손이 심해져 망원경을 동원해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상태가 됐다. 천전리각석은 바위면의 탈각현상이 눈에 띄게 늘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상한다. 암각화 보러 통도사에나 가봐야겠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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