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성 확보 절실한 지방분권시대
태화강변 공공아파트로 몰개성화
도시경쟁력 떨어뜨리는 요인 우려

▲ 정명숙 논설실장

도시마케팅이란 말은 이미 낯설지 않다. 도시마케팅은 ‘도시 공간을 관광, 비즈니스, 쇼핑, 문화 욕구 충족, 주거 등을 위한 매력적인 공간으로 상품화하고 판촉하는 활동’을 말한다. 마케팅(marketing)이란 단어가 마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도시마케팅의 과정과 결과를 들여다보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도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필수 활동이다.

도시경쟁력의 평가기준은 도시의 입지, 입주 기업이나 기관, 교통 여건, 문화 시설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기준 하나가 도시디자인이다. 도시디자인은 도시를 보기 좋게 예쁘게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 생활을 영위하거나 도시를 관광할 때 좀 더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공적 수단이자 행위를 말한다. 우리가 여행하고 싶은 세계적 관광도시들은 도시디자인을 통해 독특한 도시성(urbanity)을 확보해서 도시 자체가 브랜드가 돼 있는 도시들이다.

지난 4월29일 국토부는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들(선바위지구)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 공동주택 1만5000채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전국적으로 25만채를 짓겠다고 하더니 고작 울산 1만5000채와 대전 상서 3000채의 2개 신규공공택지를 공개하는데 그쳤다. 분명 수도권 부동산가격 완화가 주목적이었음에도 난데없이 울산의 태화강 국가정원을 끼고 있는 금싸라기땅을 LH공동주택단지로 만들어버렸다. 선바위 일대는 제2의 국가정원으로 삼아야 할 절경이 아니던가. 울산은 공공주택공급이 그렇게 절실한 도시도 아니다. 울산의 주택공급률은 2019년현재 111.5%에 이른다. 가구수가 43만7095호인데 주택수가 그보다 5만142채나 많은 48만7237채나 된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6%이고 전국평균은 104.8%이다.

게다가 울산에는 이미 여러 곳에서 LH공동주택개발이 진행 중에 있다. 다운·척과지역에 1만3000채 건립공사가 한창이다. 선바위지구 못지 않은 아름다운 수변공간인 산재전문공공병원 부지 옆에도 1300채(태화강변지구)가 계획돼 있다. 공해차단녹지나 다름없는 야음근린공원에도 4300채를 지을 예정이다. 바다 전망의 강동 산하동에도 900채 공급계획을 추진하다가 주민반대에 부딪혀 주춤하고 있다. 북구 매곡산업단지 옆에도 1155채를 계획하고 주민여론 수렴에 들어갔다. 현재 계획된 LH공동주택이 모두 3만500여채에 이른다. 울산시는 이것도 모자라서 옥동군부대 자리에도 공공주택을 지을 것이라고 한다.

주택보급률이 무조건 높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장기적으로 빈집 문제,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금융 문제 등을 유발한다. 그에 앞서 도시브랜드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점에 태화강변을 LH의 공동주택으로 둘러싸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걱정이 더 크다. 지방도시의 도시계획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지를 지정하고 대규모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전국을 개성 없는 도시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영국의 전 총리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그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고 했다. 도시경쟁력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될 수도 있는 정부정책에 울산시가 앞장을 설 일은 아닌 것이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수변공간인 태화강 국가정원은 울산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됐다. 돌이켜보면 압축성장을 하면서 도시의 특색 보다는 경제적 이득에 우선하는 주택정책으로 개성없는 강변풍경을 만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아쉽다.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은 저서 <우리는 미래를 훔쳐쓰고 있다>에서 “환경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 미래에 살게 될 아이들에게서 빌린 것”이라고 했다.

태화강변지구나 선바위지구와 같은 공공의 자산인 수변공간을 개성없는 대규모 LH공동주택단지로 만드는 일은 분명 더는 해서는 안 된다. 도시의 매력을 만들어 브랜드화하고 경쟁력을 높여 마케팅하는 일은 지방분권시대에 지자체가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명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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