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호 울산 울주군수

세상을 바꾼 건 혁명이 아니라 바이러스였다. 14세기 중반 유럽은 흑사병으로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속수무책이었던 사람들은 신에게 구원해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이내 절대 권력이었던 중세 교회 권위는 약해졌다. 신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인 휴머니즘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흑사병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노동력의 가치가 올라갔다. 봉건 영주의 힘이 약화되면서, 임금 노동자가 출현했다, 귀족이 아닌 계급이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등장이다. 결과적으로 흑사병은 르네상스와 자본주의 시대를 열어준 열쇠가 되었다.

인류 근대사에서는 천연두와 결핵, 페스트, 콜레라, 스페인 독감, 메르스, 사스 등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었다. 인류는 바이러스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는데, 인류가 진일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지난해 전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는 우리 삶 전부를 망가뜨렸다. 경제, 사회 등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췄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실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코로나는 그동안 애써 모른척했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들춰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는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지금까지 사회를 유지했던 제도와 정책으로는 코로나를 이겨낼 수 없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국민 모두에게 실질적인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혁신적인 해법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 첫 시작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해진 현금을 정기적으로 주는 제도다. 최소 생계비이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기본소득에 대한 공론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해 9월 ‘기본소득 지방정부협의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경기도 내 30개 시군 자치단체장, 울주군, 부산 금정구, 충남 부여 등 75개 지방정부가 참여했다. 기본소득지방정부협의회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뜻을 함께하는 지방정부가 모인 협의체로, 2018년 10월 제40회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처음 제안했다. 기본소득 지방정부협의회는 기본소득 정책 도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전국화, 기본소득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현실화할 방안 마련과 지방정부의 목소리 반영, 기본소득 법률 제정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할 예정이다.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기본소득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크버그, 일론 머스크 등의 세계적인 기업 CEO와 IMF, OECD,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 등 각계 지도자들이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 4월 경기도에서 개최된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박람회에서 기조 연설을 맡은 202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은 ‘기본소득’(Basic Income)에서 세계적 모범 사례가 됐고, 앞으로도 모범 사례를 제시할 것” 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K방역에 이어 코로나 이후 이상적인 사회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고무적인 메시지다.

날이 갈수록 기본소득의 실효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거세지고 있다. 내년 대선주자들은 기본소득과 비슷하지만 다른 정책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기본소득과 비슷한 취지의 정책이 다양하게 제시되는 점은 환영할 일이다. 대상과 액수에서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명제에는 암묵적으로 동의한 셈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우리 삶의 위기였지만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되기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다. 2021년 여름, 기본소득을 둘러싼 진지한 논의와 토론이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이선호 울산 울주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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