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 속 지역 문화예술인 근황
6개월간 88명의 다양한 이야기 소개
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백신은 희망

▲ 홍영진 문화부장

본보 문화면에 6개월 째 이어져 온 기사가 있다. ‘울산문화백신프로젝트-100인의 인터뷰’다. 줄여서 ‘백인백신’이라고 부른다.

기획의도는 2년째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리의 삶이 달라진 이 상황에서, 지역신문 문화면이 문화예술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공연무대나 전시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문화예술인을 지면으로나마 만나서, 근황을 묻고 안부를 전하면서 어떻게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는지 알고싶었다. 소통과 치유의 창구였기에, 백신이라는 제목까지 달았다.

‘어떻게 하면 인터뷰를 할 수 있냐’는 문의나 ‘나를 한번 인터뷰해 달라’는 요청이 적지않았다. 소식이 뜸해진 예술인은 일부러 찾아갔다. 그들의 답변은 대부분 어렵다는 하소연이었다. 돈을 벌지못해 본인도 힘들고 가족도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답변을 들을수록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했다. 코로나가 우리를 힘들게 한 건 맞지만 그로 인해 미처 몰랐던 것을 알게 됐고, 보지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소중한 그 무엇은 개개인마다 달랐지만 일상의 속도감이 한풀 꺽이자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 소중하게 다뤄야 할 것들을 내팽개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백인백신 첫회는 김성연 울산마두희축제 사무국장이었다. 마두희는 울산 고유의 전통줄당기기 놀이다. 300여년 이상의 이 전통은 80여년 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겼다. 이를 되살리기 위해 시계탑사거리에서 1500~2000명이 양편으로 갈라져 줄을 당기는 축제를 했다. 참가자들 모두가 몸을 밀착시키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면서 줄을 당겨야해서, 비말전파를 막아야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시행될 수 없었다. 축제가 2년째 취소되고 연기되는 상황에서 김국장은 오히려 마두희의 본질적 과제부터 해결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마두희를 울산시 무형문화재에 등록시켜 단순놀이 차원을 너머 반드시 지켜야 할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하루빨리 찾아주기로 했다.

연극인이자 방송진행자인 황성호씨는 공연장 땀냄새와 커튼콜 박수소리가 그립다고 했다. 무대에서의 희열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무대가 사라진 뒤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본인의 연기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와도 감사히 여기며 연기에 더 매진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세월이 스쳐지나가면서, 갓 태어난 둘째와 미운 다섯살 큰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된 걸 다행스러워하게 됐다. 주말이면 더 바쁜 아빠였지만 요즘은 텐트 하나 들고 자녀들과 함께 어디든 캠핑을 떠나는 ‘좋은 아빠’가 됐다.

백인백신을 통해 지금까지 88명의 울산 문화예술인을 만났다. 마지막 100번째 인터뷰까지 단 열 두명만 남겨뒀다. 백인백신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100명을 모두 채우고 나면, 우리를 힘들게 한 코로나가 말끔히 물러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언제나 현실과 달라,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4차 대유행이 예고되면서 우리를 더 옥죄고 있어 안타깝다.

고은희 몽돌 관장, 최은영 아나운서, 허은녕 연극협회장, 박해숙 건축가, 김잔디 울주문화재단 팀장, 백인옥 현대예술관 차장에 이르기까지 백인백신을 통해 엿보았던 울산 문화예술계는 현장의 창작예술인 뿐 아니라 기획자, 운영자, 행정가들 모두가 너나없이 버거운 시대를 묵묵히 버텨내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마지막 한 줄에 반드시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백신은 어쩌면 희망이 아니었을까 한다. 신발끈을 고쳐매는 심정으로, 우리가 놓친 소중한 그 무엇을 찾아 한번만 더 주변을 둘러보면 좋겠다.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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