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홍래 울산과학대학교 총장

붉은 여왕의 가설이란 말이 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인 앨리스가 붉은 여왕에게 “나는 분명 달리고 있는데 왜 계속 제자리인 거죠?”라고 묻자 “이곳에선 열심히 달려야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 어딘가를 꼭 가고 싶니? 그렇다면 아까의 두 배만큼 빠르게 달려야 해”라는 붉은 여왕의 대답에서 어떤 대상이 변화하려고 해도 주변 환경과 경쟁 상대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뒤처지거나 제자리에 머무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10여년 전 한때 울산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두 배에 이르고 전국에서 제일 젊은 도시이며, 전국 인구의 2% 남짓으로 1인당 자동차 보유대수 1위, 공원면적 1위, 총 수출액 1000억달러를 넘어서 국가 총수출액의 20% 이상을 상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한 해를 마감하는 울산의 기사에는 2030세대 청년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일자리 부족과 학업을 위해 타지역으로 떠나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산업 위주의 전통 제조업 일자리가 주축인 울산에서 4차 산업 분야와 관련 IT 산업군, 그리고 문화·예술·서비스 등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며 거기다가 수도권 및 대도시의 대학 진학으로 청년들의 탈울산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중 울산지역 성장률이 가장 낮았고 전체 인구수도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다.

뒤돌아보면 우리도 열심히 달려왔다. 앨리스처럼. 그런데 붉은 여왕의 말처럼 주변보다 더 빠르게 달리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방향이 달랐을까. 지난 울산의 발자취를 되새겨 보면 환경오염의 대명사였던 십리대숲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고, 연어가 돌아오는 생태 하천으로 변화했으며, 강, 산, 바다가 어우러진 놀라운 환경 도시로 바뀌었다.

또한 교통은 어떠한가. KTX와 광역전철, 도시 순환도로, 울산대교 등 부울경 메가시티의 중심이 될 채비를 갖추어 가고 있다. 의료분야는 상급종합병원인 울산대학교병원과 우수한 종합병원들 및 협조적이고 수준 높은 개인 의원 등 의료전달체계가 잘 이루어진 이상적인 의료시스템이 완성된 도시이다. 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기관 평가나 질병관리청 통계에서 확인되고, 작금의 코로나19 대응 시스템도 원활히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교육분야는 대학원 중심의 울산과학기술원을 비롯해 지방 사립대 중에서 국제 대학평가 및 국내 평가에서 항상 수위를 차지하는 울산대학교, 취업률 및 전문대학 평가에서 항상 최고 수준인 울산과학대학교와 춘해보건대학교 그리고 제조업 기술교육을 위주로 하는 폴리텍대학 등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급격한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이 급박한 타 시도에 비해 계획적으로 규모 있게 조정해 나간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대학 경쟁력이 뛰어난 울산광역시가 되리라 확신한다. 거기다가 앞으로 늘어나는 노인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실버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청년들에게 취업모델을 제공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울산의 자산을 과소평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너무 쫓기듯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한 가지 더 부연하자면 우리는 울산의 대학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필자가 미국에 연수하던 시절, 전미 대학 농구 대회의 열기와 인기에 놀랐으며 그들이 왜 이렇게 대학 농구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미국 동료가 자기 지역에서 대학 축제나 대학 간 운동경기가 열리면 승패와 상관없이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라고 했다. 도시의 대부분 행사는 대학과 함께하며, 시민들은 자기 출신대학에도 기부하지만 자기 지역 대학에 기여하는 것을 더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일류대학이 없는 일류도시는 전 세계에 없다.’ 울산시민이 울산의 대학교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유로 손색이 없는 표현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언제나 그러하듯 위기 때마다 솟아나는 긍정의 힘으로 희망을 열어가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조홍래 울산과학대학교 총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