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 부장대우
약 7000년 전 선사인들은 반구대암각화라는 큰 선물을 울산에 남겼다. 육상동물과 해상동물의 수렵 과정을 비롯한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반구대암각화는 발견 이후 50여 년이 지난 현재, 울산과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세계인의 보물로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다. 울산시의 계획대로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한다면 반구대암각화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암각화나 포르투갈 코아 계곡 암각화 같은 세계적인 암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선사인들은 자신들이 새긴 암각화 때문에 후손들이 물 문제로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구대암각화는 사연댐 건설로 대곡천 수위가 높아지면서 매년 물에 잠기고 있다. 정부는 울산 물 공급을 위해 반구대암각화 일원인 대곡리에 1965년 사연댐을 건설했고 불과 6년 뒤인 1971년 문명대 교수가 반구대암각화를 발견했다.

사연댐 건설후 매년 주기적으로 물에 잠긴 반구대암각화는 지속된 침수로 훼손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반구대암각화의 침수를 막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울산의 물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울산의 양대 식수원 중 하나인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면서 물 부족 문제가 두드러진 것이다. 이에 울산 ‘맑은 물’ 공급 대책이 수립됐고 운문댐의 ‘청정 원수’를 울산에 공급하는 방안이 도출됐다.

하지만 이제는 공식적으로 맑은 물이나 청정 원수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정부는 낙동강 물 공급과 관련된 각종 프로젝트에서 맑은 물 대신 ‘안전한 물’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울산시 미래비전위원회가 열었던 시민 대토론회에서는 맑은 물이라는 단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발제자 중 한 사람은 울산 시민의 절반이 사연댐이 아닌 낙동강 물을 마시고 있는데, 그럼 지금까지 울산시민은 맑은 물이 아닌 더러운 물을 마신 것이냐는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맑은 물이라는 표현은 고도정수장을 이용하는 시점에 적절한 표현이 아닌 만큼 안전한 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안전한 물이라는 표현은 적절한가? 지난해 울산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실시한 낙동강 용수 표본 조사에서 발암물질인 과불화옥탄산이 두 차례 검출됐다. 지난 2월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실시한 낙동강 용수 시료 채취에서는 발암물질인 과불화옥탄산과 1,4-다이옥산이 검출됐다.

낙동강 중상류인 성서공단과 구미 일원에서 발암물질이 다량 배출된 뒤 하류로 내려오면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행히 기준치 이내여서 음용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언제 대형 사고가 발생할지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낙동강 물을 안전한 물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제는 맑은 물과 안전한 물 확보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해야 할 때다. 맑은 물은 맑은 물대로, 안전한 물은 안전한 물대로 공급받아 식수 걱정을 덜어야 한다. 맑은 물 확보를 위해 최대한 많은 수량을 운문댐에서 받아오고, 보조 수원인 낙동강 물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상류지역 폐수 처리 고도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반구대암각화를 새긴 울산의 조상들도 후손들이 맑고 안전한 물을 공급받길 원할 것이다. 이춘봉 사회부 부장대우 bong@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