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상헌 문화부 차장

경복궁, 숭례문 등을 비롯한 오래된 건축물은 존재 자체만으로 훌륭한 문화자원이 된다. 만약 오래된 건축물이 본래의 용도를 잃었다 해도 그 건물이 갖고 있던 오랜 역사는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산업구조 재편으로 버려진 낡은 산업시설을 리모델링 해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할 수도 있다.

유럽 등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사업이 진행됐다. 문을 닫은 영국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2000년 문을 연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성공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옛 공업도시 이미지를 사라지고 있는 영국 글래스고와 게이츠헤드에서도 ‘트램웨이’나 ‘발틱 현대미술센터’ 등으로 런던의 테이트모던 못지않은 각각의 문화관광벨트를 이루고 있다. 특히 발틱 현대미술센터는 한때 성황을 이뤘던 탄광과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뉴캐슬 지역의 볼품 없는 작은 도시로 전락한 게이트헤드가 반대를 무릅쓰고 도시를 살리기 위해 상징물을 세우는 문화프로젝트를 꺼내든 결과물이다. 상징물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찾아들었고 나아가 문을 닫은 영국 최대 제분소를 고쳐 발틱 현대미술센터도 세웠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쾌거들이다.

울산도 올해 전국 최초의 국가공업지구로 지정된 지 60주년이 되면서 오래된 산업시설이 있다. 이런 산업시설은 단순한 낡은 건물이나, 산업시설, 문화시설, 체험시설도 아닌 누군가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일했던 삶의 터전이다. 이 시설로 오늘날의 우리와 울산,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까지 이뤄낸 산업유산이자 생활유산이다.

하지만 이런 생활유산이 점점 사라져 간다. 부수고 새로 짓기 바쁘다. 울산엔 그나마 지난해 6월 장생포문화창고가 울산 남구에 문을 열었다. 어업이 쇠퇴하면서 폐허로 남겨진 옛 세창냉동창고를 남구가 사들여 5년 만에 문화시설로 결실을 보고, 신종코로나 확산세 속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유동 인구가 많고, 가용 토지는 부족한 도심에서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땅을 확보하고, 건물을 새로 짓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유동 인구가 적은 곳의 울산 산업시설을 리모델링한 장생포문화창고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하드웨어적인 문제는 해결됐다. 가장 좋은 콘텐츠를 채워가면 된다. 다만 문화창고 개관까지 일련의 과정처럼 자치단체장의 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에 정치적 득실에 따른 운영 방침 변화가 없길 바란다. 또 장기적으로 중앙·지방 정부의 지원 없이 문화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예산 자립도도 높여야 한다.

장생포문화창고가 끝이 아니다. 국가공업지구 지정 60년. 울산은 산업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산업구조 재편으로 방치된 근대 유물들이 울산의 새 얼굴로 거듭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 문화 경쟁력을 준다. 폐허라고 생각한 시설에서 울산 문화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

전상헌 문화부 차장 honey@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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