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야 합법적 직업이 된 탐정
탐정업 기본법 등 체계적 법제화로
미제사건 해결에 공익적 활약 기대

▲ 이준희 미국변호사

법원 주변에 자리한 법조타운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무수한 법률사무소 간판들을 보게 된다. 간판들에는 통상 자격명과 구성변호사 이름들이 알아보기 쉬운 서체로 적혀있기 마련인데, 며칠 전 다른 도시에 있는 법조타운을 업무 차 들렀다가 빼곡한 사무실 간판들 사이에서 ‘탐정’이라고 또렷이 적힌 글자를 발견하곤 놀란 적이 있었다.

소설이나 미디어 속에서만 보아오던 탐정이 우리나라에서 직업으로 구체화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이전에는 명칭을 사용한 영업이 금지되던 탐정과 탐정업(민간조사업)이 2020년 2월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같은 해 8월부터 비로소 직업으로서 영위가 가능해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때까지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우리나라가 탐정업 서비스를 법 테두리 안에서 허용하지 않았던 유일한 국가였다는 것이다.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탐정이 현실의 직업으로서 허용되게 된 배경에는 1998년부터 7차례에 걸쳐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었던 법안들과, 2016년 한 퇴직 경찰관이 신청한 신용정보법 제40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다(2018.6.28. 2016헌마473). 당시 헌법재판소는 탐정 명칭의 사용을 금지한 신용정보법이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신청인의 주장을 기각하며 심판대상 법률이 입법상 과잉금지 원칙 범위 내에서 기본권을 제한하므로 합헌이라 판단하였는데, 이후 법 개정을 통해 해당 금지 조문이 삭제됨으로써 민간업체가 탐정업을 명시하여 영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매체들을 통한 문화적 콘텐츠로서의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직업으로서 탐정의 역사를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달리, 남북전쟁 참전군인이었던 앨런 핑커튼에 의해 1850년 역사상 최초의 탐정회사가 설립된 미국은 워싱턴 DC를 포함한 모든 주에서 탐정으로 일하거나 관련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 역사도 170년이 넘을 만큼 길다. 연방법에 의한 통일적 규율 대신 주별로 상이한 관련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 정부에서 공인하는 탐정면허(CPI)를 발급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 자격시험(PI Test)에 합격해야 하며, 연령, 학력, 범죄경력·심신미약 이력 유무 등 신원조회와 심사를 거치고, 자격 취득 후 실무 중에도 정기적으로 보수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등 탐정 직무가 프라이버시 등 시민들의 법익이나 경찰 수사권 등 공권력을 참칭·방해하는 일 없이 본래 취지에 맞게 수행될 수 있도록 법적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궁에 빠진 사건에서 비범한 관찰력과 추리로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 속 탐정과 달리 실제 탐정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미국의 경우 탐정회사들의 가장 주요한 고객은 보험회사들이다. 의뢰기업을 대신하여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건에 대한 조사업무나 자료 수집을 수행하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 밖에도 소매회사의 의뢰로 악성 클레임을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를 조사하는 일이나, 로펌의 의뢰로 소송수행에 필요한 증거와 자료를 현장에서 확보하거나 주요 증인의 신변을 보호하는 일, 그리고 가족 의뢰로 실종아동이나 가출 청소년을 수색하거나 소재를 파악하는 일과 같이 사건 해결을 위해 그 필요성이 분명하지만 수사기관이나 전문가들이 전면에 나서서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일들이 탐정들의 주요 업무가 된다.

합법의 영역으로 들어오기는 했으나, 우리나라에서 탐정업이 제도 안으로 안착하는 데는 여전히 많은 입법 공백이 있다. 여러 차례 발의되었으나 제정에는 이르지 못한 탐정업 기본법을 비롯해 관리·감독을 수행할 정부 기관, 고유 업무의 범위, 관련 직역 간 경계 설정 등 민감한 사안들과 유관 단체의 반발이 극심한 쟁점들이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고 있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조사·탐문 관련 수요를 제도 안으로 받아들이는 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소모한 결과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들이 불법성을 감수한 일들을 저지르게 되고, 이로 인해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탐정업의 법제화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미제사건의 해결과 같은 공익적 업무사례들이 생겨나는 데까지 발전하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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