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봉진 울산경찰청 교통계장 경정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 아산로를 지나면 볼 수 있는 모 공장에 적혀 있는 글귀다.

울산은 한국의 공업화와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 장면내각이 기획한 울산공업도시 계획에 의거하여 공업도시를 목표로 인위적으로 성장이 이루어진 도시가 울산이다. 이후 울산에서는 공단이 만들어졌고, 공단에서는 자동차와 선박을 조립했으며, 이를 위해 울산시 내외에는 도로를 사통발달 확장했다.

이 시대의 도로는 사람보다 자동차의 것이었고, 울산의 도로는 특히 물류수송을 위한 것이었다. 부산~울산~경주를 잇는 경남권 물류수송의 중심축 중 하나인 7번 국도의 이름마저 산업로가 되었던 것도 기이한 일이 아니다. 도로는 속도경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좀 더 빠르게 부품을 나르고, 경제성장을 계속해야 했다. 보행자의 불편과 안전을 희생하더라도, 자동차가 멈추지는 않았어야 했다. 속도는 산업화 시대정신이었다.

산업화의 시대가 가고, 중진국에서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자 더 이상 속도가 미덕이 아닌 시대가 오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속도보다는 절차, 발전보다는 배려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었다.

2021년 도입된 안전속도 5030은 도심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도심내 속도를 30㎞내지 50㎞로 하향했다. 사고 발생시 충격속도 10㎞ 감소시 보행자의 생존율을 크게 올릴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과 차량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의 정책 철학의 변화를 근거하고 있다. 바야흐로 차량의 시대는 보행자의 시대로, 속도의 시대는 안전의 시대로 변화했다. 이것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고 극한의 속도로 치닷던 산업화 시대의 속도 중심철학에 대한 종국 선언이었다.

그런데 올해 4월 울산내 11개소에 대한 속도 상향이 교통시설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 이것은 ‘안전속도 5030’ 정책의 기저에 깔려 있는 보행자 중심 철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당 정책을 ‘고도화’한 것이다.

안전속도 5030도입이후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 들이 있었고, 규제에 대한 과도기적인 일시적 부적응의 결과이기도 했으나 어떤 비판은 정책의 일률적·일방적 적용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전자는 우리가 감수해야할 몫이지만 후자는 정책적합성을 높여서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정책의 취지가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현장의 도로여건과 구조에 적합한 속도설정이 필요한 것이다. 현장과 규제가 서로 맞지 않으면 운전자가 속도 규제를 지키기 어려워진다.

교통경찰의 두가지 목표는 안전과 소통이다. 이 두가지 서로 상충된다. 안전을 위해 끝없이 규제를 할 수도 없고, 소통을 위해 한없이 허용할 수도 없다. 양 극단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 안전과 소통을 두루 만족시킬수 있는 어느 적정선이 있는 것이다. 그 판단기준은 교통공학에 기초한 과학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본적 철학에 기반한 정책적 문제이기도 하다. 2019년 5030 속도 하향과 금번 조정은 현장과 정책, 이론과 실제, 정책의 이면에 깔려 있는 철학에 대한 고민의 결과인 것이다.

남봉진 울산경찰청 교통계장 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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