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가습기살균제 사고는 건강을 위해 구입해서 사용한 가습기가 살균제 독성으로 인해 거꾸로 사용자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친 사회적 참사다. 2022년 4월29일까지 정부에 신고된 피해자만 7712명이며 이중 사망자가 1774명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참사 조사위원회를 통해 인정된 공식 통계일 뿐, 생산 판매한 가습기 수를 감안하면 피해자 95만명에 사망자가 2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발생한 기간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8년간으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4명의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였다. 이 기간 생산 판매된 가습기살균제는 48종류 998만개에 이른다. 이중 옥시와 애경이 60%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피해자 배(보)상에 대해서도 60% 이상을 부담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옥시와 애경은 조정위의 권고안 중 자신들 부담이 과하다는 등 몇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던 폐질환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찾기 위한 노력과 가해기업에 대해 책임을 묻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정부의 외면 속에 피해자 가족들의 피눈물나는 절규와 호소만 있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를 만나 정부의 책임을 사과하고 해결을 약속했으나 여전히 미완의 상태로 임기를 마쳤다. 가해 기업들에 대한 처벌은 일부 임직원에게만 전가됐다. 2016년 검찰의 1차 수사와 기소로 실형이 확정된 기업 관계자는 옥시 4명, 롯데마트 3명, 홈플러스 2명 등 12명이다. 6년 실형을 받은 옥시 임원 2명도 이미 만기 출소했다. 피해 규모나 범죄 내용에 비춰보면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했다.

특히 가장 많은 제품을 생산 판매한 옥시는 영국의 다국적기업인 ‘레킷’이 2001년부터 인수한 한국 자회사다. 인수 초기에는 사장직을 한국인(6년 실형)이 맡았지만 2005년부터 2017년경까지 4명의 사장을 외국인이 맡았고, 임원 대부분도 외국인이었다. 그렇지만 외국인 사장과 임원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옥시가 가장 많은 제품을 판매해 피해자도 가장 많이 발생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마케팅 이사와 대표이사를 지낸 거라브 제인(Gaurav Jain) 사장은 한국 검경이 인터폴에 적색수배만 했을 뿐, 지금까지 진행된 것이 없는 상태다. 이러니 가습기살균제 살인 가해기업의 대표격인 옥시와 애경이 최소한의 조정안 권고조차 거부하는 것이다.

지난 5월3일 건강했던 배구선수 출신 안은주씨가 1774번째로 사망했다.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하다 2011년 ‘원인모를 폐질환’으로 쓰러진 이후 11년이 넘는 투병 생활을 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고 가족은 빚더미를 떠안았다. 故안은주씨 가족이 당한 불행은 단지 운이 없었던 것일까? 정부와 기업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일임에도 정부는 국민이 당하는 억울한 죽음과 불행에 대해 방관자로 머물고 있다. 더욱이 가해 살인기업은 제품판매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취하고도 최소한의 배상조차 거부한다. 이 기막힌 현실을 보다못해 시민 환경단체가 다시 불매운동에 나섰다.

지난달 25일 선포식을 시작으로 들불처럼 전국각지로 번지고 있는 옥시 애경에 대한 불매운동은 조정위원회 권고안에 대해 나머지 7개 기업은 동의했는데 옥시와 애경의 거부로 촉발됐다.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살인기업, 엄청난 사회적 참사를 일으키고도 인정 사과 배상을 거부하는 기업은 존재할 가치가 없으므로 시민의 힘으로 퇴출시켜야 한다. 울산에서도 지난 5월4일 32개 시민사회단체가 옥시 애경에 대한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이들 옥시 애경이 생산 판매하는 제품(스파크, 트리오 등)은 사지도 이용하지도 말아야 한다. 울산시민들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가해 살인기업의 외국인 경영자에 대해서도 주권국가로서 공정과 상식에 의한 사법 정의를 세워주기 바란다.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