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욱 울산 남구청장

2021년 6월26일. 낡은 냉동창고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장생포 문화창고의 생일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지역 주민들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초대해 개관식을 열고 이곳을 소개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첫 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남구는 장생포 문화창고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문화공간 관련 인프라가 부족했던 남구에서 예술인을 양성하고 문화생태계를 조성해 미래 문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의미 있는 발걸음이 모여 개관 1주년을 앞두고 누적 방문객은 8만명을 넘어 이제 장생포 문화창고는 공간재활용의 모범사례이자 울산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업무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이 방문했던 곳이지만, 새삼 다시 문화창고를 찬찬히 살펴봤다. 바닷바람을 느끼며 보고 있으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라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호화스럽게 지은 건축물은 아니지만 대신에 물질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대한민국 공업화의 태동이 시작된 곳이자 고래가 헤엄치는 바다가 있는 울산과 남구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의 역사를 기념하면서 문화예술을 담아낼 수 있었다.

세창냉동창고의 흔적이 남아 있는 벽면을 손으로 짚으니 용도를 잃고 오랜 시간 방치돼 있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때는 코를 찌르는 생선 비린내도 참 심했던 기억이 난다. 자리를 옮겨 북카페 지관서가 유리창 밖 풍경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바라본 바다 전망과 노을이 지고 물결에 비치는 공단 야경은 울산 남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홉 곳의 풍경, 울남9경에 선정된 이유를 알게 해준다.

체험존에는 어린이들이 모자에 예쁘게 그림을 그린 드로잉캡과 박스아트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규모는 조금 작지만, 우리 남구에서도 세계적 거장 반 고흐의 작품을 미디어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문화예술의 문턱을 낮춰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치유와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롭다. 바쁜 업무 속에서 잠깐의 힐링을 하다 보니 ‘상전벽해’, 그리고 ‘감개무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로 건물을 지어야지 왜 버려진 창고를 고쳐 쓰냐’며 울산에서는 처음 시도한 공간재활용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켰던 과정들, 소모적인 논쟁의 시간들, 사실과 다른 억측과 비난들.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울산 중심 지자체라는 위상에 맞지 않게 5개 구·군 중 유일하게 구립문예회관이 없어 지역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때문에 ‘문화 불모지’라는 남구에 달린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떼어내기 위한 제대로 된 문화예술을 키워낼 공간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산업수도를 넘어 문화도시 남구가 돼야 한다는 열망을 한 데 모아주신 덕분에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장생포 문화창고가 문을 열었고, 이렇게 값진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이 지면을 빌려 그동안 힘이 돼준 주민 여러분, 문화예술계 인사 등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성과에 취해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 공간재활용의 대표적 성공사례인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비하면 장생포 문화창고는 아직 배고프다.

더 많은 지역 작가들을 발굴해 키워내고, 다른 지역의 작가들도 자리 잡아 꿈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위해 내실 있는 콘텐츠를 강화하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위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문화예술이 피어나는 품격높은 문화관광도시 남구가 되려면 행정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문화예술 번영을 위한 남구 르네상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서동욱 울산 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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