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정족산, 산은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山水’에 관심 많았던 다산 정약용
산줄기-물줄기 불가분의 관계
‘여유당전서’에 글로 남기기도

울산~양산 경계에 위치한 정족산
솥 모양 바위에 ‘솥발산’이라 불려
맑고 쉼없이 흐르는 계곡과
운흥사·대성암 등 사찰 품고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산과 물의 관계
삶 속 ‘상호존중’ 의미 되새겨

▲ 정속산 정상
▲ 정속산 정상

1. 다산이 처음으로 한시를 지은 때는 그의 나이 7살 때(1768년)이다. 다산은 여섯 살 때 연천 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가서 연천에서 살았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 멀고 가까움의 지세가 다른 탓이지(小山蔽大山 / 遠近地不同)’. 이 시는 다산의 첫 한시 작품으로 그가 일곱 살 때 연천에서 지었다. 시를 본 다산의 아버지는 “분수와 소장에 밝으니 산수 같은 학문에 통달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 대성암 원통전.
▲ 대성암 원통전.

다산은 ‘산수(山水)’에 관심이 많았다. <여유당전서> 제2집 제24권, ‘상서고훈’(尙書古訓) 권3 ‘우공편(禹貢篇)’에 산줄기와 물줄기에 관한 다산의 글이 전한다. 고대 중국의 우왕이 산과 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그 이치를 따랐기 때문에 황하의 치수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 글에 따르면, ‘두 산 사이에 반드시 흐르는 물이 있으니 산줄기와 물줄기는 서로 관계하고 얽힌다. 물줄기를 알고자 하면 먼저 산줄기를 살펴보아야 하고 산의 이치(山條)에 도달하지 못하면 물줄기를 알 수 없다. 산은 물에 의하여 나누어지고 물은 산에 의하여 갈라지며, 산줄기와 물줄기가 서로 관계하고 서로 얽히니 산을 떠나서 물을 논할 수 없다. 산에 가면 물을 보아야 하고 물을 보면 산을 생각해야 한다.
 

▲ 정족산 계곡의 모습.
▲ 정족산 계곡의 모습.

2. 정족산(鼎足山, 748m)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과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정족산의 다른 이름은 솥발산이다. 산 정상에 길게 뻗은 바위 모습이 가마솥을 바치고 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정족산 근처 모든 곳이 물천지가 되었어도 산봉우리는 솥발만큼 남아 찰랑거렸다고 한다. 정족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오늘의 코스는 ‘반계마을회관~ 운흥사지부도탑~ 대성암~ 정족산~ 지맥분기점~ 운흥사지~ 반계마을회관’으로 원점회귀이다.

반계마을 뒤로 조금 걸으면 운흥동천(雲興洞天)이 나온다. 계곡물이 맑고 쉼 없이 흐른다. 누군가는 지리산 쌍계사의 화개동천과 가야산 해인사의 홍류동천과 함께 영남의 삼대 동천이라고도 하지만, 그들에 비해서는 지극히 소박하다. 동천은 도교의 신선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널리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봉산탈춤을 보면, ‘낙양동천이화정’(洛陽洞天梨花亭)이란 말이 나온다. 동천은 낙양에 있던 지명으로 신선들이 모이는 신령스러운 곳이었다. 이화정은 신선들이 모이던 정자 이름이다. 이런 까닭에 동천은 신선들이 모여 사는 신령스러우면서도 빼어난 경치를 지닌 곳이란 의미가 되었다.

▲ ▲오늘의 산행코스반계마을회관→운흥동천→운흥사지 부도밭→대성암안내간판(삼거리 정자)→대성암→정족산→운흥사지→운흥사→운흥동천→반계마을회관
▲ ▲오늘의 산행코스반계마을회관→운흥동천→운흥사지 부도밭→대성암안내간판(삼거리 정자)→대성암→정족산→운흥사지→운흥사→운흥동천→반계마을회관

운흥동천을 지나면 운흥사지부도(雲興寺址浮屠)를 만난다. 운흥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신라 26대 진평왕 때에 창건하고, 고려 말 3대 화상 중 한 명인 인도사람 지공화상이 중건하였다. 1614년(광해군 6)에 대희선사가 재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1749년(영조 25) <학성지>의 기록에는 이미 폐사되고 없다고 되어있다. 한때 50여 암자를 거느린 울산 제일의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 웅장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황량해졌는지, 제행무상이라고, 우주 만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한순간도 같은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왠지 쓸쓸했다.

3. 주 능선으로 향하는 길은 대체로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담한 정자가 있는 삼거리에 닿았다. 가져온 술 한 잔 마셨다. 나는 산을 찾을 때는 고량주나 보드카처럼 맑고 독한 술을 가져온다. 소동파의 <전적벽부>에 ‘잔을 씻고 다시 술을 따르는데, 안주가 다 떨어지고 없더라’(洗盞更酌 肴核旣盡)라는 말이 나온다. 무릇 술을 마시는 즐거움은 술을 많이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잔을 씻어 다시 권유하고 싶은 사람과 마시는 데 있다.

대성암으로 향했다. 콘크리트 길이어서 썩 편하지는 않았다. 길을 걷다 보면 제일 좋은 길이 흙과 나무와 바람이 있는 길이다. 물소리는 감초이다. 대성암은 원통전이 유명하다. 원통전은 특이하게도 자연석 돌로 쌓았다. 원통전(圓通殿)에서 원통은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통전은 두루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관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사찰의 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살을 모신 당우로 관음전이 많다. 관음이 모든 환란을 구제하는 보살일 뿐 아니라 그의 서원이 철두철미하게 중생의 안락과 이익에 있기 때문이다.

원통전과 요사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정족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산길은 제법 경사가 있고, 계속 오르막이기에 조금 힘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바람이 있어서 덥지는 않았다. 산 정상에는 용의 모양을 한 용바위가 있는데, 가뭄이 들면 용바위에 제단을 마련하고 산신에게 비가 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운흥사는 원적산에 있다(雲興寺在圓寂山)’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족산도 천성산·원효산과 더불어 원적산으로 총칭되었던 것 같다. 정상석에 앉으니 세상이 온통 초록이었다. 멀리 주남고개로부터 천성산 2봉과 1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대쪽으로는 영축산과 함박등, 채이등, 죽바우등, 시살등, 오룡산으로 이어지는 영축지맥의 능선들이 보였다.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4. 일곱 살 다산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큰 산이 작은 산을 가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세에 따라서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릴 수도 있다. 산줄기가 있어 물줄기가 있지만, 물줄기가 있어 산줄기가 있다. 산과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산은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을 수 없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수직보다는 수평이 좋고 일방(一方)보다는 상호(相互)가 좋다. 나 아닌 다른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며,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산은 늘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준다. 산에 가서는 물을 봐야 하며 물을 보면 산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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