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 부장대우

대구시가 경북 구미시와 지난 4월4일 체결했던 ‘맑은 물 나눔과 상생 발전에 관한 협정’을 불과 4개월여 만에 전격 해지했다. 협정을 체결했던 두 지자체 단체장이 지방선거 이후 모두 바뀌었고, 이들이 보여왔던 그동안 행보를 감안하면 불협화음은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해지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수순이었다.

두 지자체 모두 귀책사유가 상대방에게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대구는 구미 시장이 지방선거 과정에서 보였던 상생 협정 반대 활동은 물론, 상생 협정의 요건 미비·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이미 합의했던 해평취수장이 아닌 타 취수장 협의 요구 역시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구미는 이에 맞서 대구가 진정으로 합의서를 준수할 의도였다면 파기에 앞서 적어도 한 번은 구미에 진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그런 시도조차 없었던 만큼 애초에 협정을 이행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라며 맞불을 놓고 있다.

이번 협정 해지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당사자가 아닌 울산시다. 대구는 현재의 낙동강 취수원을 유지하면서 안동댐을 중심으로 다른 취수원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구미 역시 현 상황을 유지하더라도 크게 악화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울산은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한 뒤 수위를 영구적으로 낮추는 대신 대구와 협의해 대구가 이용 중인 운문댐의 용수 일부를 공급받아 물 문제와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전략이었지만, 협정 해지로 수포가 됐다. 특히 협정 해지 과정에서 확인된 대구의 운문댐 물 배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향후 전망을 더 어둡게 한다.

상황이 이대로 고착되면 울산의 맑은 물 확보와 반구대암각화 보존은 요원해진다. 그러나 이번 협정 해지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안주찬 구미시의장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협정 파기의 책임을 구미에 돌리는 것은 몽니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구미 해평취수장은 경북도지사의 역할이 있어야 하는 광역 취수원인 만큼 구미시장과 대구시장, 안동시장, 경북도지사가 참여하는 4자 회담을 열어서 취수원 이전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미 역시 협정이 이대로 해지되는 것은 반기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감안하면 이대로 대구가 계속 구미와 울산을 적으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치러진 두 차례 대선에 모두 참여했던 홍 시장이 자신의 정치적 여정을 대구에서 끝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 시장이 차기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울산과 구미라는 두 지자체 시민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행위를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그래서 제기되고 있다. 지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김두겸 울산시장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맑은 물 상생 협정이 단순히 대구와 구미 두 지자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만큼 김 시장이 정부와 함께 중재에 참여할 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김 시장이 정치력을 발휘해 새로운 돌파구를 연다면 대구와 구미에 빚을 지울 수 있고, 이는 울산의 운문댐 물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춘봉 사회부 부장대우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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