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훈 울산MBC PD

우영우 변호사의 머리에 문제의 해답이 떠오를 때, 반드시 고래가 등장한다. TV드라마 속 주인공, ‘거꾸로 읽어도 바로 읽어도 우영우 변호사’ 덕분에 지금 고래도 함께 뜨고 있다. 더불어 고래특구 장생포를 찾는 손님이 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누가 뭐래도 울산은 고래도시다.

고래가 가장 힘들 때는 새끼를 낳을 때다. 고래는 허파호흡을 하는 동물인데 새끼는 물속에서 낳아야 한다. 갓난 고래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수면 위로 코를 내밀고 첫 숨을 쉬지 못하면 질식사로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에, 이스라엘의 사해바다처럼 소금기가 아주 많아서 몸이 저절로 붕 뜬다면 어떨까? 갓난 고래새끼가 죽을 확률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머리좋은 고래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울산의 옛이름이 뭔가? 바로 염포(鹽浦)다. 울산해안은 소금을 생산할 정도로 염분농도가 높았다. 그래서 예부터 고래는 울산앞바다에서 새끼를 낳았던 것이다. 그 증거가 반구대암각화에 있는데 어미고래의 등에 올라탄 새끼고래 그림이다.

한국사람들은 산모가 아이를 낳고나면 미역국을 먹는다. 이것 또한 고래로부터 배운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새끼 낳은 고래 뱃속을 보니 미역이 가득했고, 악혈이 녹아 물이 돼 있었다. 이후로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이 좋은 줄 알고 미역을 먹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미역을 먹었을까? 그 확실한 해답도 울산바닷가에 있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 개국공신인 울산호족 박윤웅에게 울산앞바다의 미역채취권을 하사했는데 그 증거가 바로 울산 정자앞바다에 있는 미역바위다. 그 미역바위를 통해서 볼 때 고려시대 훨씬 이전부터 우리민족은 미역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1912년에 울산 장생포에 와서 귀신고래를 연구했던 미국 고래학자 앤드류스의 논문을 보면, ‘귀신고래를 잡아 배를 열어보니 미역이 녹아 젤리가 돼있었다’라는 한 줄의 기록뿐이다. 그는 고래가 왜 미역을 먹었는지, 또 그 미역으로 인해 악혈이 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더더구나 알지 못했다. 고래의 습생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울 줄 알았던 우리 조상이 얼마나 현명했는가.

18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보면, 솔피(범고래)가 무리를 지어 다른 고래를 사냥할 때, 가장 먼저 다른 고래의 혀를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이젠 상식이 됐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서양의 고래학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기록으로 남긴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우리의 관찰과 탐구가 놀라웠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반구대암각화의 고래그림을 처음 본 국립수산과학원의 고래학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고래의 분류코드를 그대로 그려 놓았다!’ 흙을 삼켜 그 속의 새우를 골라먹는 귀신고래는 배주름이 클 필요가 없다. 반구대암각화에 보면 2~3줄의 짧은 가슴주름이 있는 고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귀신고래다.

반면 엄청난 물과 함께 멸치나 꽁치를 삼키는 혹등고래는 배주름이 길고 엄청 깊다. 그것은 배를 부풀려 많은 물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반구대에는 머리를 아래로 향하면서 길게 배주름을 새긴 고래가 있는데 바로 혹등고래다. 이 외에도 북방고래의 S자 입모양, 범고래 몸의 독특한 하얀색 무늬까지 각 고래의 특징들만을 정확하게 묘사해 놓았다. 그것은 오늘날 고래학자들이 고래를 분류하는 방식과 똑같다. 6천년전 바위그림 실력이 이 정도다.

뿐만 아니라 반구대암각화에는 고래등에 깊이 박힌 작살, 고래잡이용 그물, 또 다양한 고래잡이배도 등장한다. 심지어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묘사돼 있다. 고래해체 전문가 주태화씨는 그 그림을 보고 자신이 해체하는 방법과 똑같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울산의 선사인들은 물가에 떠밀려온 고래를 먹었거나 얕은 물가로 고래를 몰아서 잡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반구대암각화를 보면, 거친 바다에 나가서 마구 헤엄치는 고래를 직접 보지 않고는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그래서 오늘 전세계의 암각화 학자들이 반구대를 두고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흔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영우 변호사처럼 우리도 하늘을 나는 큰 고래를 상상해보자. 막혔던 문제가 뻥 뚫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영훈 울산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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