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가운데서도 자신에 상처주지 말고
현재의 내모습에 온전히 집중하며 살아
삶의 마지막에 스스로 대견해할 수 있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달 저의 정신건강 대중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가 나온 후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깊이가 없다는 평가도 있고 인생을 쉬운 언어로 돌아보며 마음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서평도 있었습니다. 사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다양한 관점에서 삶에 적용해볼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쓴 글이라 누군가에게는 다 아는 이야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가끔씩 마음이 힘들 때 다시 펼쳐 보고 확인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제 오랜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글은 어렵지 않은데 내겐 다 지나간 이야기들이라 강한 느낌이 없어서 읽는데 오래 걸렸어.” 그러면서 별일이 아닌 것 같은데 자주 힘들어하는 어른이나 고등학생 자녀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유학도 다녀와 외국계 회사의 임원을 하다 다른 분야로 이직을 할 정도의 어른이면 단단함과 유연함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친구도 가끔씩 힘든 마음을 서로 다독이곤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던 것입니다. 마치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토익 시험을 어려워하지 않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특히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에게 역경을 통해 성장하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 전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의 졸업사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회에 나가는 졸업생들에게 최근 주목 받는 성과를 이룬 선배가 전하는 이야기였기에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수학자이며 한때 시인을 꿈꿨기 때문인지 함축적인 표현이 많았습니다. 저는 문장에서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에 대한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다.

금융위기, 감염병, 전쟁 등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불행하게 자신이 가장 취약할 때 발생하기도 합니다. 리더의 업무 피드백은 성과 개선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불필요한 비난이 추가되어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자주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마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 또한 자주 발생합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우울증을 앓기도 하고 더 심하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승진, 은퇴, 노후 준비와 어느 병원의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길 바란다.

청소년기에는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초기 성인기에는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중년에는 ‘생산’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데 이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서부터 인류사에 남는 훌륭한 예술 작품을 남기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노년에는 죽음을 앞두고 삶을 돌아보며 자아를 통합합니다. 인생의 지혜를 사회에 나눕니다. 그런데 이런 심리사회적발달이 취업, 결혼, 승진 등 숫자로 변질됩니다. 아파트 평수나 자동차 배기량에 정신이 팔려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만약 추석에 친척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이런 숫자들이 아닌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라면 우리는 덜 산만해지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반갑게 맞이하길 바란다.

누군가는 나를 비교하고 깎아내리기 위해, 누군가는 그냥 별 의미 없이 그런 말들을 하며 내 마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이런 방해를 이겨내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내 모습에 온전히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먼 훗날 삶을 정리하는 순간에 ‘만족스럽게 살았네. 대견하다’며 스스로를 바라봐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에게 친절하게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숫자로 된 결과가 아닌 자신의 목표를 행동으로 옮긴 것에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단단해집니다. 그 결과로서, 부산물로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 결과물로 나를 평가하고 비난할 수 있지만, 적어도 자신만큼은 자신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타인에게도 비슷하게 친절할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제 대학 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의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도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친절히 대하며 이것이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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