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희선 화봉고 교사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없는 지평선. 난생처음 광야를 마주한 연암 박지원은 문득 통곡하고 싶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쁨과 설렘으로 울고 싶어진 것이다. 연암이 벅찬 마음으로 통곡하고 싶었던 것처럼 슬픔, 사랑, 분노, 기쁨, 미움 등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극에 닿으면 울음이 된다. 울음은 가장 강력한 육성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지고한 언어다.

하지만 우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는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을 나약하고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으니 어려서부터 눈물을 참아야 했다. 눈물을 감추는 것에 익숙해져 그만 눈물 흘리는 법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우리에겐 눈치 보지 않고 울 용기가 필요하다. 실컷 울다 보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져 이전과는 다른 감정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응어리로 뭉쳤던 마음에 긍정의 기운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도 샘솟게 된다. 또한 제때, 제대로 우는 것도 중요하다. 지나간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해서는 안되니 울고 싶을 때 참지 말고 울어야 한다. 마음 둘 곳 없는 날, 어딘가 콕 박혀 펑펑 울고 싶은 날엔 통곡할 만한 자리가 절실하다.

코로나로 한적했던 울산공항 주차장은 한동안 내게 멋진 울음터였다. 마음이 힘들 때면 출근 전에 잠시라도 들러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가끔 노을이 아름다운 날엔 퇴근길에 들러 지친 하루를 위로받기도 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큰 위안과 힘이 된다. 학교나 동네 곳곳에 맘껏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믿을 만한 사람의 어깨에 기대 우는 것도 좋다. 타인의 그늘을 읽고 말없이 곁을 내어주고,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이가 있다면 그곳이 가장 좋은 울음터일 테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교육청이나 지자체에서도 마음 건강 회복 지원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돌보는 것이다. 내 안에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버럭이, 까칠이가 들려주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보듬어야 한다. 사계절이 존재하는 내 마음 속에서 눈물이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꽃을 피우고 신록을 드리우고 찬란한 빛깔들로 물들이게. 그리하여 또다시 겨울이 찾아온대도 그 때는 좀 더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게. 마음에 찾아오는 모든 계절을 기꺼이 만끽할 수 있게 말이다.

울기 좋은 계절이다. 통곡할 만한 자리를 찾아 맘껏 우시라. 천진하게 열심히 울다 보면 마음속 먹구름이 걷히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올가을에는 소리 내어 엉엉 울어보리라. 부디, 홀로 울게 하소서.

황희선 화봉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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