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풍경과 삶 - (7) 천전리 암각화(각석)

백악기 공룡들 노닐던 대곡천
태고적 모습 간직한 비경 자랑
살짝 기운 2.7m 높이 바위면엔
원시인들의 생활·신앙 등 담은
다양한 문양 깊게 새겨져 있고
하단부엔 신라인이 남긴 명문

▲ 천전리각석소견(川前里刻石所見)(104x51㎝, 한지에 수묵담채, 2022)

천전리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2에 있다. 지도를 검색해보면, 반구대에서 대곡천 북쪽에 천전리 암각화가 있고 남쪽에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천전리 암각화는 지정 당시 천전리 ‘각석’으로 불렀다.

이것은 신라시대 세선화와 명문(銘文) 등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천전리 ‘서석(書石)’은 법흥왕 시대에 새긴 원명(原銘)에서 갈문왕이 그렇게 이름 지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은 신라인의 각석보다 원시시대에 그린 암각화가 양도 많고 가치 비중이 높기에 ‘천전리 암각화’라 통칭하여 부른다.

◇천전리 암각화의 비경(秘境), 비화(秘畵) 압축파일

1970년 12월24일, 문명대가 이끌던 동국대 불교유적조사단은 원효의 반고사지를 찾아 반구대에 이른다. 반구대 인근 주민, 당시 집청정의 주인인 최경환씨의 제보와 이들 조사단에 의해 천전리 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진다. 이후 천전리 암각화는 1973년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으로 지정됐다. 천전리 암면(바위면)은 장방형의 편평한 바위이며 동향으로 위에서 안쪽으로 15°가량 기울어져 있다. 암면의 높이는 약 2.7m, 너비는 9.5m이다. 암각화 앞에는 대곡천 냇물이 흘러 돌아간다.

천전리 암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숨겨진 비밀과 유적의 압축파일을 가지고 있다. 먼저 주변 경관이 원시 자연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파일이다. 이 파일을 풀면, 암각화 앞 개울 건너편 암반대에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발자국과 대곡천을 따라 굽어 도는 풍광이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즉 1억년 전 백악기 시대 공룡의 생활 공간인 이곳은 자연 자체가 문화유산이며, 비경(秘境)이다. 두 번째는 숨겨진 원시인들의 생활과 신앙, 역사를 보여주는 암각화 파일이다. 이 파일을 풀면, 사실적 모습을 드러낸 구상화(동물화 등)와 기하학 무늬인 추상화의 비화(秘畵)로 가득하다.

◇천전리 암각화의 네 가지 구성

암각화 연구자들의 보고와 견해를 종합(문명대, 전호태, 이하우 교수 등)해 볼 때 천전리 암각화는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암면 상단부에 점 쪼기 기법으로 새겨진 동물과 인물 암각화이다. 천전리 암각화에서 가장 먼저 새겨진 것으로 뭍짐승과 바다짐승, 물고기, 고래(1점), 상어 등 다양하다. 동물 가운데 초식동물이 93마리, 육식동물은 26마리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물화는 활을 든 남자상과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짐승인 인명수상(人面獸像)이 있다. 동물화는 사냥과 생명 번식을 기원하는 원시인들의 주술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동물 사냥은 수렵시대 원시인들에게 생계수단이었다.

두 번째는 깊게 갈아새긴 기하학 문양으로 상단부에 산만하게 흩어져 새겨졌다. 135점 정도로 마름모 모양 42점, 원과 동심원, 나선형 29점, 물결 모양 10여 점과 가면형 얼굴 1점과 기타 뱀, 물고기 등이 발견되었다.

원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동심원은 하늘, 마름모는 땅을 표현한다. 이것은 농경사회의 자연 숭배, 신앙과 관련이 있다. 특히 중심부에 세로선이 있는 동심원은 여성의 성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풍요로운 수확을 바라는 원시인들의 생활과 사고를 나타낸다.

세 번째는 가는 선긋기로 새긴 세선화로 바위 왼쪽 하단부에 있다. 신라인의 행렬도, 돛배, 동물, 용, 물결 모양 등의 풍경을 새겼다. 행렬도에는 말 탄 인물상 16점과 깃 장식 모자와 격자무늬 바지 입은 사람을 비롯한 전신상(全身像) 20점 등이 발견되었다.

네 번째는 오른쪽 하단부에 있는 신라인이 남긴 명문(銘文)으로 모두 218점이다. 시기는 453년(눌지왕 37)으로부터 838년(민애왕 1)으로 왕과 귀족, 화랑 등의 이름이 있다.

특히 주목하는 명문은 원명(原銘)과 추명(追銘)이다. 원명은 525년(법흥왕 12)에 사탁부의 갈문왕(법흥왕의 남동생) 일행이 이곳에 온 것을 기념하여 새긴 글이고, 추명은 14년 뒤인 539년(법흥왕 26)에 갈문왕의 부인인 지몰시혜비(지소부인) 일행이 이곳을 찾은 사연을 기록한 글이다.

천전리 암각화 주변 경관은 1억년 전에 살았던 공룡의 생활 공간으로 자연사의 소중한 유산이다. 천전리 암각화는 한민족의 청동기시대인 1000년 전후 이곳에 살던 원시인들의 생활과 사고, 시대의 변화 등을 새긴 그림 언어다.

천전리 암각화는 5세기 이후 신라인의 삶과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과 글자판이다. 천전리 암각화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신앙과 예술 등을 기록하여 압축한, 유적의 알집이다. 생명 터전의 단층이다. 한국 문화유산의 보물창고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

※QR코드를 찍으면 간단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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