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울산대학교 운동장과 윤종수

평당 8만원 선에서 거래 타진하자
이후락측 50만원 요구…2년간 흥정
윤종수 총무과장이 정보형사 통해
5공정권이 산 뺏을거란 소문 듣고
이후락 매형 만나 해당 정보 흘려
4억여원짜리 땅 6400만원에 구매
운동장 조성 부지 마련한 공으로
윤종수과장, 체육진흥실장직 얻어
부패하던 특기자 선발규정 수정 등
울산대 체육 발전 위해 최선 다해

▲ 1980년대 중반 정주영 회장의 지시로 교직원들과 함께 야산을 축구장으로 조성한 후 기념으로 심었던 해송홀 앞 모과나무에 막걸리를 주고 있는 윤종수 전 울산대학교 체육진흥실장

울산대학교 동편에는 큰 운동장이 있다. 사방 나무가 빽빽한 이 운동장에서 요즘은 학생들이 주로 축구 시합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1980년대 중반 당시 윤종수 총무과장을 비롯한 울산대학교 교직원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

이 운동장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야산으로 우석 이후락의 부인 정윤희 여사의 소유였다.

그런데 1984년 10월 어느 날 정주영 회장이 헬리콥터를 타고 울산대학교를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울산대는 넓은 운동장이 없어 정 회장은 학생회관 옆 작은 공간을 이용해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정 회장이 학교에 왔을 때 이관 총장과 임의택 총무처장, 이채관 경리과장 그리고 윤종수 총무과장이 맞았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정 회장은 학교를 둘러본 후 이 총장에게 “대학 발전을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당시 정 회장은 대학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할 때라 가끔 대학을 찾았다.

이때 이 총장이 동편 숲을 가리키면서 “최근 학생들이 많아져 운동장이 필요한데 저 야산을 구입해 운동장을 조성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 회장이 야산의 소유주가 누구냐고 물었고 이때 이 총장이 이후락 전 부장의 부인 정윤희 여사라고 말했다.

▲ 울산대학교 축구장.
▲ 울산대학교 축구장.

당시 이 총장 옆에 있었던 윤종수 총무과장의 얘기다. “우석 이후락 선생은 대학 초기 우리 학교 이사장이었기 때문에 울산대학교 교직원들 대부분이 그때까지도 우석 선생을 ‘전 이사장’으로 불렀는데 이때 이 총장이 ‘전 이사장’ 대신 ‘전 부장’으로 부르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당시 야산은 2600여㎡(800여 평)였는데 정 회장의 지시 후 학교 측은 이 야산의 구입을 서둘렀다. 야산 구입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당시 이 산은 우석의 집사로 오랫동안 일했던 정택락씨가 관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임의택 총무처장과 이채관 경리과장이 서울로 가 정씨를 만났다.

그리고는 평당 8만원씩에 이 산을 팔아달라고 요청했다. 학교 측에서 이런 액수를 제의 한 것은 당시 중앙도서관 주변 땅도 대학이 매입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는데 이 땅을 평당 8만원으로 책정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정씨가 평당 50만원은 받아야 한다면서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둘은 성과 없이 학교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학교 측은 2년여 동안 정씨와 땅 가격을 놓고 흥정을 벌였지만 정씨는 요지부동이었다.

학교 측으로 보면 운동장이 꼭 필요한 상태였고 더욱이 야산 매입이 정 회장 지시였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이 총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의 우려가 컸다.

그런데 어느 날 정보 형사 한 명이 윤종수 과장을 찾아왔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의 데모가 잦아 정보 형사들이 학생들의 동향을 알기 위해 학교를 자주 드나들었다. 이날 윤 과장을 찾은 형사는 “울산대는 학생들이 동편 야산에 많이 숨어 있다가 나와 데모를 하기 때문에 경찰이 데모를 막기가 힘들다”면서 “대학이 야산을 사 넣어 학교 땅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형사는 “5공 정권이 이후락 선생을 부정 축재자로 몰아 이 산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정보가 정보 형사들 사이에 자주 들리는데 혹시 윤 과장은 모르냐”고 물었다.

실제로 당시 5공 정권은 김종필을 비롯한 박정희 정권의 고위 공직자 10여 명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재산을 몰수할 때였다. 이 무렵 우석도 학성고와 우석고 등 울산육영회 소속 학교를 5공의 강압에 못 이겨 내어놓은 상태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윤 과장은 이 정보를 우석이 알면 산을 빼앗기기 전 싼 가격에라도 팔려고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이 정보를 우석에게 전해 주기 위해 찾아간 사람이 윤진하씨였다. 윤씨는 우석의 매형으로 윤 과장이 초등학교 교사 자리를 그만두고 울산대학교로 올 때도 도움을 주었다.

당시 윤씨는 월평성당이 가까운 신정동에서 살고 있었다. 윤 과장은 이날 윤씨를 만나 형사가 귀띔해준 소식을 전하고 이 산이 5공에 넘어가기 전 울산대가 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이 말을 들은 윤씨는 오히려 윤 과장에게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어 고맙다”면서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가 윤씨를 만난 후 며칠 있지 않아 윤씨는 우석에게 산을 팔도록 해놓았다면서 이천으로 가 우석을 만나보라고 말했다. 우석은 이때 정치에서 물러나 이천 도평요에서 도자기를 만들면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윤씨는 이천에 갈 때는 서울에 있는 그의 아들 윤원조에게 말해 두었으니 그와 함께 가라고 했다.

윤 과장은 당시 우석을 만났던 기억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제가 윤원조씨와 함께 우석 선생 집을 방문해 땅 문제로 왔다는 얘기를 올렸더니 대뜸 ‘정주영이 왜 내 땅을 싸게 먹으려고 하느냐’고 고함을 친 후 사전에 학교 측에서 만들어간 계약서에 사인해 주었습니다.”

윤 과장의 얘기는 이어진다. “그런데 우석 선생이 계약서에 ‘정윤희 대리인 남편 이후락’으로 사인해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우석 선생의 부인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혹 우석 선생이 연예인하고 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택락씨의 주장대로라면 4억여 원을 주어야 살 수 있었던 땅을 6400만원에 구입했고 정 회장의 지시를 이행했으니 학교로 보면 윤 과장이 큰일을 한 셈이다.

▲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실제로 윤 과장은 학교로 돌아온 후 이 총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이런 칭찬에도 불구하고 윤 과장은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것은 우석 선생과 계약해 땅을 사놓기는 했지만 등기 이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땅이 울산대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미국에 머물고 있던 정 여사의 인감증명을 받아야 했는데 정 여사가 미국에서 장기간 머물다 보니 인감증명을 받을 수 없었다.

이처럼 땅의 등기 이전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재무 처리가 어려웠다. 땅을 샀으면 으레 등기 이전이 되어야 했는데 연말까지도 이전이 되지 않아 재무 처리가 안 되었다. 이러자 처음에는 칭찬했던 사람들도 “등기도 되지 않는 땅을 윤 과장이 무리하게 사들이는 바람에 학교 재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정윤희 여사가 계약 2년 뒤 미국에서 귀국해 해결되었다. 이때 인감 증명을 받기 위해 윤 과장이 다시 이천으로 갔는데 그를 본 정 여사는 “땅은 팔았지만, 그 돈을 나는 한 푼도 써보지 못했다”고 웃으면서 인감증명서를 만들어 주었다.

이후 윤 과장은 학교에서 칭찬만 받은 것이 아니고 좋은 보직도 얻었다. 당시 그가 받은 보직이 체육진흥실장이었다. 이 자리는 체육선수를 스카우트하는 자리로 대학교수들이 아니고는 차지할 수 없는 자리였다. 실제로 그때까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대학에서 대학교수가 아닌 일반 행정 직원이 체육진흥실장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다.

대학으로부터 이런 배려를 받았던 윤 과장은 울산대의 체육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가 이 자리에 앉은 후 먼저 한 일이 체육특기자 선발 규정을 고치는 일이었다. 윤 과장이 체육진흥실장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일반대학 중에는 체육특기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대학 감독과 고등학교 감독, 학부모 사이에 선수 선발을 놓고 금품이 오가는 등 말썽이 생겨 사법부에 고발당하는 사태가 자주 생겨 대학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따라서 윤 과장은 이런 잡음이 없도록 체육선수를 선발할 때는 선수의 고교 경기실적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작성한 실기와 면접 평가를 정확히 해 우수한 선수가 선발되도록 했다.

윤 과장은 울산대학이 테니스 명문교로 자리 잡게 되는 데도 이바지했다. 울산대는 1980년대 테니스 명문교가 되는데 이것은 윤 실장이 유진선 선수처럼 일류 선수를 스카우트했기 때문이다.

윤 과장은 운동장이 조성되었을 때 스스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내 해송홀 앞에 모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이 나무가 지금까지도 잘 자라고 있다. 윤 과장은 학교를 떠난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막걸리 두말을 갖고 학교로 가 이 나무가 잘 자라도록 뿌려주고 있다.

대학에서 물러난 후 2008년 울산시 교육위원회 의장을 지내기도 했던 윤 과장은 현재 울주군 청량읍 청송마을에서 살고 있다. 장성운 지역사 전문가·울주문화원 이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바로잡습니다
2022년 10월17일 자 13면 중 ‘김취려 장군 산소와 선양사업’ 제목의 ‘11대 김진봉 언양면장’은 ‘17대 김석봉(金錫鳳) 상북면장’으로 바로잡습니다. 아울러 ‘김성득 전 울산대교수’도 ‘김성득 울산대 명예교수’의 오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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