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

2001년 11월7일, 나 역시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렀고 사진학과 입시를 위한 지독한 실기 준비를 했었다. 그 뒤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작업실에서 공부하던 입시생들을 멀찍이서 지켜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미술대학 입시생이 된 딸을 바라보는 엄마가 된 올해, 내가 수험생이던 그때보다 마음만은 더 힘들었다. 바로 오늘 수능시험을 치러 갔다. 사실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매진한 딸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이름난 미대에서는 이제 실기 시험이 사라지고 있고, 실기 전형이 있는 시험장에는 입시 미술을 달달 외운 학생들이 넘쳐난다. 예고에 진학한 딸아이는 정규 수업 시간에 전공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밤까지 학원에서 또 미술 입시교육을 받았다. 10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기술 습득에 가까운 교육을 받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아이는 다시 펜을 잡았다. 자신의 그림을 잃은 것 같은 조바심이었다. 아이는 스스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울면서 그림을 그린 날도 숱하다고 했다. 그런 아이의 전부였던 그림 인생에 대고 입시철인데 왜 더 공부하지 않았냐고, 왜 더 빨리 입시 미술을 시작하지 않았냐고 다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이면서 선배 시각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내가 작가를 꿈꾸며 미대 진학을 목표로 한 딸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참으로 이중적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학교에 가야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길을 찾는 것이 바로 작가인 것이라고 듣기 좋게 포장된 조언을 전하다가도 슬그머니 욕심이 찾아든다. 기왕 자신의 길을 찾아 갈 거라면 좀 더 쉽고 빠른 길을 찾는 게 좋을 텐데,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교를 가서 유명한 교수님께 배우고 큰 시장을 경험하는 것이 좋을 텐데. 이제는 어느 쪽이 엄마의 마음이고 어느 쪽이 선배 예술인의 조언인지 조차도 모르겠다.

좋은 작가는 좋은 작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좋은 작업‘만’으로 모든 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작가에게도 분명히 배경이 필요하고, 그 배경을 만드는 과정 중 하나가 입시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제한된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완성도뿐인 실기 시험도, 그런 폐해를 없애겠다고 성적으로만 평가하는 예술대학도 기이한 입시 환경을 조성하는데 한몫을 한 것 같아 씁쓸해진다. 실기 용품이 든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실기시험을 치르러 다니던 아이의 뒷모습이 무거운 고민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처럼 우리는 함께 걸으며 길을 찾겠지.

열심히 살아보니 나에게는 대학, 수능은 생각보다 별것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경험들이 모두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기에 섣부른 조언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 시험을 치를 모든 입시생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은 기도를 전한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