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수환 전 울산대 연구교수

지역사 전문가 장성운씨가 지난해 10월 이렇게 기고를 썼다. “위열공은 63세의 나이로 타계한 후 강화도에 묻혔다. 훗날 후손들은 위열공 산소를 그가 태어났던 언양 화장산으로 이장하고 지금까지 화장산 산소에서 향제를 올리고 있다.”

그는 이렇게 강화도의 위열공 김취려 장군 묘소를 후손들이 언양 화장산으로 이장했다 하고, 이를 입증하는 각종 증거를 제시했다. 첫째, 위열공 14세손 김천일 장군이 언양향교 유림을 만나 공의 묘소를 확인했다” 둘째, “이후 언양향교 유림이 위열공 묘소 향제를 주관했다” 셋째, “22세손 김경환씨가 향교 유림 43명으로부터 화장산 묘소가 진묘라는 약조를 받아내고 지금도 문서를 후손이 보관하고 있다” 넷째, “위열공 후손인 언양면장이 진묘 확인을 도왔다” 등이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 이렇게 말했다. “위열공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나를 울산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그를 선양하는 사업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장씨는 이렇게 위열공의 강화도 묘소를 후손들이 언양으로 이장했다 하고 언양 묘소가 진묘이니 활발한 선양사업이 필요하다 했다. 장씨 글의 전체적 맥락은 명백히 위열공의 언양 묘소가 진묘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 필자는 이렇게 반론했다. “강화도 묘소가 진묘임은 학계와 문중이 공히 인정하는 사실이다” “언양향교 유림은 언양 묘소 향제를 주관한 적 없고, 유림은 사사로운 문중의 묘제를 주관하지 않는다” “언양향교 유림은 가문의 묘소 진위를 확인해 주는 집단이 아니다. 그러니 김경환씨가 소장하고 있다는 약조문을 공개하라” 등이다.

장씨는 필자의 반론에 대해 재반론해 왔다. “자신은 언양과 강화도 어느 산소가 진묘인지 단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확인할 사항이 아니다”. 앞의 말 강화도의 묘소를 ‘언양으로 이전했다’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리고는 “후손들이 언양으로 산소를 이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 ‘이장했다’를 ‘이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로 말을 바꾸었다.

그의 말 바꾸기는 이렇게 계속된다. “위열공 14세손 김천일 장군이 언양향교 유림을 만나 공의 묘소를 확인했다”는 “조선시대는 향교 유림이 지방을 대표하는 지식층으로 지방 사정을 잘 알아 김 장군이 유림을 만나 협의했다고 볼 수 있다” 했다. ‘확인했다’를 ‘협의했다고 볼 수 있다’로 바꾼 것이다.

김경환씨가 언양향교 유림으로부터 받아낸 약조 문서를 공개하라는데 대해서는 “이 문서는 김병조 언양문중 이사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니 확인하기 바란다”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독자가 의문을 제기하면 증거를 내놓고 성실히 답하는 것이 연구자의 올바른 자세이다. 지금이라도 김병조씨로부터 문서를 입수해 사진이든 복사본이든 당당하게 공개해야 한다. 덧붙여 촉구한다. 반론을 회피한 “언양 유림이 위열공 묘소 향제를 주관했다”와 “언양 면장이 진묘 확인을 도왔다”는 말도 근거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장씨는 이렇게도 썼다. “송씨가 언양 묘소가 가짜라는 주장을 펼치자 김창조 전 언양김씨 문중회장이 찾아가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반론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 말은 사실과 다르다. 필자는 회장을 만나 “언양 묘소는 진묘가 아니니 제가 문중 어른들께 설명드리고, 해결할 좋은 방도를 함께 모색해 보자”고 제안했다. 회장은 얼마 후 “문중회의에서 ‘이런 모임은 진묘가 아니라는 사실을 공표하는 일이 되므로 불가하다’로 결론지었다”고 답해왔다. 이것이 전부이다.

장씨는 언양 묘소가 진묘가 아닐 경우 언양김씨 문중으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거나, 이를 문화재로 지정한 울산시가 곤란해진다 했는데, 이는 문중과 시 당국이 사실을 확인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일이지 자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또 언양김씨 문중에서 법적 소속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은근히 필자를 겁박하는데, 진실을 밝힐 기회라 생각하며 기다리겠다.

송수환 전 울산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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