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개업후 30년째 봉사
넉넉하지 않지만 수익 절반
짜장면 봉사 재료비로 지출
가게 닫고 가족과 함께 봉사
아내 건강악화에 식당 접고
개인 용달하며 봉사 이어가

▲ ‘짜장면 봉사왕’으로 불리는 이광희씨는 오랫동안 운영했던 중식당 대신 개인용달을 하면서 짜장면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제 젊은 시절 인생은 짜장면과 봉사입니다. 건강하게 가치를 좇는 삶을 살아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다.”

14살 때부터 식사라도 제대로 챙기고 싶어 시작한 짜장면 일로 봉사의 기쁨을 발견한 이광희(58)씨가 인생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본보 2002년 8월26일자 등)

이씨는 1993년 3월6일 짜장면 집을 개업한 뒤 그해 5월5일 첫 봉사를 시작했다. 그가 30년째 봉사를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봉사를 통해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생각으로 양로원 등 복지시설에 봉사를 나갔다. 당시 이씨가 좋은 일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하나 둘 늘린 봉사처가 어느새 한달에 7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봉사 열정만큼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3~4살이던 첫아이를 업고 장사하며 셋방살이하던 시절에 수입의 반을 봉사한다며 재료비로 지출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내는 가족보다 봉사에 집중한다며 많이 속상해했다”면서도 “사람들이 제가 만든 짜장면을 먹는 것을 보면 삶에 감사하게 되고 작은 것이지만 힘이 되어주고 싶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씨의 봉사활동은 1998년께 언양의 한 장애아동 복지시설에서 만난 한 중증 장애 아동으로 인해 일상이 됐다. 누워서 밥을 먹어야했던 아이는 유독 짜장면을 좋아해 달력에 이씨가 오는 날을 표시해두고 매일 날짜를 세며 ‘짜장면 아저씨’를 기다렸다.

아이가 ‘짜장면 아저씨’를 보고 싶어해 직접 식사를 챙겨준 적도 여러번이다. 아이는 식사하면서 쥔 손을 식사를 마치고도 놓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의 봉사가 지속되는동안 아이와 이씨도 점점 각별해졌다. 하지만 이별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시설을 찾은 날 이씨는 아이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는 “그날 마음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더 자주 갈걸’하는 마음이 후회로 남았다”며 “25년 전 시작된 인연이고 15년이나 된 이별인데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들로 아내와는 봉사를 한달에 한곳만 가기로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이후 이씨는 되려 가게문을 닫고 가족들과 함께 봉사 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가족들도 같이 봉사를 다녀본 뒤로는 오히려 이씨의 마음을 이해해줬다.

그렇게 그는 삼산 대하반점의 운영과 봉사를 병행하다 지난 2017년 오랫동안 운영하던 가게를 접었다. 수십년을 장사와 봉사를 반복하면서 아내의 몸이 많이 안 좋아진 탓이다.

생계는 이씨의 개인 용달일로 꾸려가고 있다. 이씨는 가족들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크다. 봉사만 한다고 가족들과 놀이동산도 한번 못 다녀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봉사하며 받은 표창도 수십개가 넘는데 가족에 미안한 마음에 걸어두지 못하고 창고에 다 넣어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봉사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진심이다. 표창을 받으며 봉사왕으로 소문이 나자 지역 정치권 출마 권유도 수차례 받았다. 이씨는 그간 해온 봉사의 의미가 퇴색될까 모두 거절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짜장면 봉사를 힘닿는 데까지 하는 것이다.

이씨는 “봉사는 어려울 때 베푸는 게 더 값진 것”이라며 “일이 많이 없어 예전 수입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지만 원할 때 봉사를 더 다닐 수 있으니 좋다”고 웃었다. 강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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