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화장산과 언양읍성 영화루

도화설화에서 유래한 화장산
겨울 굴 속에서 핀 복숭아꽃이
신라왕의 병 낫게 한 것처럼
치유의 기운 퍼지길 염원하며
이름 붙였을 언양읍성 영화루
오영수 잠든 화장산 기슭에서
문학의 책무를 다시 돌아본다

화장산(花藏山)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 내 가까이 있는 높이 271m의 야트막한 산이다. 화장산은 신라시대 화장굴에서 수행하던 도화라는 중과 굴 안에 복숭아꽃이 피어 있었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화장산은 ‘꽃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란 뜻인데, ‘꽃을 품고 있는 산’이라 해도 되겠다. 화장산은 불교와 천주교를 함께 품고 있다.

화장굴은 화장암으로 지금은 굴암사로 불교 도량이고, 울산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언양성당은 1936년 건립된 천주교 성지다. 화장산은 송대리에 언양 출신 작가 오영수 묘지가 있고 2014년에는 오영수문학관이 건립되면서 문학을 품은 산이 됐다.

◇화장산, 문학을 품다

봄날, 오영수문학관 옆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따라 화장산으로 오른다. 쭉쭉 뻗은 소나무와 적송(赤松)이 있는 흙길이다. 드문드문 진달래꽃이 피어난 길이다. 둘레길은 구불구불하다. 구불구불한 숲길은 발길을 부드럽게 한다. 숲길을 나오니 시멘트 길이다. 화장산 정상으로 가는 차도이다. 숲길이 시적이라면 시멘트 길은 산문적이다. 몇 해 전 화재로 불 탄 자리 여기저기에 벚꽃이 피어 흐드러졌다. 벚꽃길을 따라 오르니 산정에는 천주교 공동묘지와 일반인들의 묘지가 함께 있다. 조정권 시인은 ‘산정묘지 1’에서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라 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 벚꽃이 날리는 산꼭대기에서 묘지를 바라본 사람이라면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구절에 더 공감하게 된다. 높은 정신은 추운 겨울 속에서 드러나지만, 산정묘지의 봄날은 밝음과 덧없음의 감성을 동시에 자아낸다. 감성이 있어 봄날을 느낀다. 삶과 죽음의 길이 있어 봄날은 흐른다. 아니, 봄날은 간다.

화장산 산정묘지를 지나 내려오면 ‘도화정’(桃花亭)이 있고, 정자 앞에는 복숭아나무가 새빨간 꽃송이를 주렁주렁 달았다. 도화정은 도화설화와 관련이 있다. 설화는 구비문학으로 소설의 모체이다. 화장산은 도화설화에서 탄생된 산이다. 이곳에는 오영수의 소설 <요람기> 중 춘돌이가 콩서리 한 콩을 다 먹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입간판에 적혔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또 꼬챙이로 땅을 치면서 ‘범버꾸범버꾸’하는 동안, 춘돌이는 ‘얌냠’ 하고 냉큼냉큼 잘도 주워 먹었다. 꼬챙이로 땅을 치다 보니 언제 콩을 주울 새도 없었고, 입 속에 두어 알씩 까 넣는 콩마저 ‘범버꾸범버꾸’ 하다 보니 씹을 수도 없었다”라는 구절은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실려 있어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그런데 <요람기>의 배경은 화장산이다. 근거는 오영수의 자전적 소설인 <고향에 있을 무렵> 중 “읍내에서 동북편으로 위치한 이 밤밭등이야말로 내 어린 시절을 길러준 둘도 없는 요람이었다. 둘레는 아카시아와 가시덩굴로 얽혔으나 질펀한 잔디 등성이로는 오솔길이 나 있고 군데군데 잔디를 곱게 입은 무덤들이 도래솔에 둘러 있었다”라는 부분에서 확인된다. 이어 춘돌이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읍내의 동북편은 오영수의 고향인 언양 송대리며, 화장산 밤밭등이 <요람기>의 배경이다. 도화정에서 왼쪽으로 계단을 지나 송대리로 내려오면 서상연 시인의 ‘작가 오영수 여기 잠들다’라는 시가 있는 간판 아래에 오영수의 묘지가 있다.

◇화장산 복숭아꽃의 의미

화장산 주인은 화장굴에서 겨울에 꽃을 피웠다는 복숭아꽃이다. 복숭아꽃은 도화 승의 분신이 되어 신라 왕의 병을 낫게 했다. 화장굴 안, 맑은 샘인 염천 전설이 더함으로써 복숭아꽃의 의미는 목숨을 살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데 방점을 두었다. 도화 설화의 의미를 확장한 것이 언양읍성 영화루(映花樓)이다. 영화는 ‘꽃이 비친다’는 뜻이고, 꽃은 화장산의 복숭아꽃이다. 복숭아꽃이 비취는 영화루는 복숭아꽃으로 백성들의 생명을 살리길 염원하는 뜻이 담겼다고 여겨진다. 이런 복숭아꽃 설화와 언양읍성을 제재로 한 빼어난 작품이 언양 출신 구소 이호경의 ‘화장암’이다. 인용하면, “커다란 화장굴에 약샘이 흐를 때, 언양읍성 누각에 복숭아꽃이 비쳤다네. 바위는 신라 불상으로 남아서, 말없이 웃으며 천 년을 지켜 오시네.(大巖開室藥泉流, 曾說桃花映郡樓, 片石尙存羅代佛, 無言含笑度千秋)”(송수환 역)

인간의 삶과 죽음처럼 꽃은 피어 화장(化粧)을 하고, 꽃이 지면 화장(火葬)을 한다. 그런데 화장산 복숭아꽃은 겨울 굴속에서 화장(花藏)하다가 세상에 나와 병든 생명을 치료하고, 목숨을 살렸다. 화장산 복숭아꽃처럼 문학과 문화가 이성복 시인이 말한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세상을 향해 생명력을 불어넣기를 희망한다. 현대문명에 병들고 자본주의에 상처받은 삶을 위무하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고투(苦鬪)하기를 소망한다.

부언한다면 화장산은 언양의 진산이고, 영산이다. 더하여 화장산은 문학과 문화, 종교와 생명의 길을 품은 산이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
※QR코드를 찍으면 간단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인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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