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헌희 DNV 본부장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처법)이 시행된 지 1년2개월을 지나고 있다. 이해관계자의 한사람으로서 기업의 투자와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는 점에서 중처법에 제기된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의미 있는 역할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법에 의한 제재 강화가 안전사고율을 대폭 감소시킬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다.

‘처벌 강화가 범죄를 막을 수 있느냐?’ 에 대한 분분한 의견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산업재해가 줄어 드느냐?’ 에 대한 답을 찾기는 더 어렵다. 범죄는 인지와 의도가 작용하지만, 사고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이유와 함께, 사고에 연관되어 있는 수많은 원인을 근원적으로 차단(예방)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처법이 대기업의 안전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에 분명한 시발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기업의 구체적인 노력은 세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안전 조직의 강화이다. 기업의 최고안전관리경영자 직책이 보편화 되고 직책에 상응하는 예산수립 및 집행을 포함한 의사결정 권한이 현실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안전 조직 및 전문 인력 확대와 위상강화, 협력사 안전 기능이 조직화되었다. 이런 변화는 향후 안전 역량 증진으로 나타날 것이다.

두 번째는 구성원의 참여이다. ‘자율 안전’은 구성원 스스로가 위험을 인지/수용/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구성원 참여에 대한 중요성 인식과 실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빠르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듯, 자율적 안전문화 또한 기대보다 빠르게 자리 잡을 것이다.

세 번째는 시스템적 접근이다. 우리 기업들의 비약적인 발전은 물적, 지적, 인적 자산의 핵분열과 같은 증폭 과정이었다. 특히 인적 자산은 짧은 기간내에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절대적 요소였다. 인적 자원의 우수성이 첫번째 요인이지만 이들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한 희생적 노력이 물적·지적 자산의 부족함을 메꿔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의 역할과 책임이 바탕이 된 시스템적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필자는 지난 20년 동안 다양하게 HD현대중공업의 안전을 접할 기회를 가졌던 덕분에 외부인으로서 비교적 HD현대중공업의 안전문화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HD현대중공업은 전형적 인력집약 산업으로 수만명의 근로자들이 대형 기계·기구와 화학물질을 다루며 높은 곳, 밀폐된 장소, 폭염과 혹한에 노출되는 초대형 철 구조물과 함께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한마디로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위험이 도처에 깔려 있는 작업 현장이 조선소이다.

그들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 안전한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만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CEO와 경영층들의 최일선 현장 활동을 통한 리더십 안전 구축, 어려운 시황 속에서도 수천억의 안전 투자와 군소 협력사까지 안전 조직 및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 지원을 통한 역량 및 체계 확보와 함께 구성원 참여형 안전문화를 실천해 왔다.

HD현대중공업에서는 중처법이 시행된 직후인 지난해 4월2일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느껴질 만한 아픈 기억 이후 1년간 전 임원 현장 상주 안전점검 실시, 관리감독자/안전지킴이/안전관리자 3중 안전관리 체계 구축/운영, 체험/실습형 안전교육 다양화, DT(Digital Transformation) 기술 접목 안전관리 등 전방위 노력을 기울인 결과 중대재해 없는 만 1년을 맞았다. 그들의 노력과 수고는 격려 받고 박수 받을 일이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1등 안전 조선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1972년 HD현대중공업이 창립된 후 50년이 지났다. 지난 50년이 만들어온 ‘세계 최고의 조선소’란 명예에 다음 50년은 ‘세계 최고의 안전한 조선소’라는 명예가 더해지길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이헌희 DNV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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