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근 울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지난해 한 드라마 시사회. 그곳에서는 무궁화가 그려진 티켓을 관람객에게 나눠주었다. 그 티켓 안에는 무궁화씨가 들어있었다. 보는 이는 드라마에 흡입됐고, 손에 든 무궁화 씨앗에 감동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조선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하며 번영을 꿈꾸는 한인 이민 가족 4대(代)를 기록했다.

K-콘텐츠의 열기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글로벌 아티스트인 BTS의 활동은 ‘한국 최초’를 넘어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 문화가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놀라울 정도다. 이제 외국인에게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싱어 싸이’라고 묻지 않아도 될 정도다. ‘한국’은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브랜드’가 돼, 한국 콘텐츠는 전 세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K-콘텐츠로서 옹기의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미국의 한 언론에서 김치의 맛을 내는 전통 발효 방식의 원리를 설명하며 미생물 생장의 최적 환경을 만드는 옹기에 주목했다. 옹기 안팎에는 미세한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김치 유산균이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숨 쉬듯 내뿜도록 돕는다. 한겨울 장독에서 꺼낸 김치에 뜨끈한 쌀밥을 한 숟가락 뜨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이듯 K-문화와 옹기는 떼려야 뗄 수 없이 긴밀하다. 무릇 문화라 하면 시대를 통찰하고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옹기가 가진 이미지, 한국의 정서, 여타의 도자기와 다른 꾸밈없는 아름다움, 은은하게 풍기는 색감. 이런 요소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옹기야말로 한국 대표 콘텐츠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이 아닐까?

‘옹기’의 가능성은 이미 인정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관광자원을 개발·육성하고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자생력을 갖춘 지역 우수축제를 문화관광축제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울산에서는 2020년 ‘울산 옹기 축제’가 유일한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됐다. 옹기축제가 열리는 온양읍 고산리 ‘옹기마을’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30여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전쟁을 피해 많은 피난민이 모여들었고, 옹기 수요가 높아진 시기에 옹기 제작한 터를 찾던 옹기장인 허덕만씨가 외고산 인근에 땅을 얻어 공장을 짓고 가마를 만들어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옹기를 배우려는 도공들도 각지에서 몰려와 마을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1970년대 이후 플라스틱 용기의 출현과 거주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옹기 산업은 정체를 겪는다. 그럼에도 현재 울주 외고산옹기마을은 국내 최대규모의 집단 옹기촌으로 여전히 대한민국 옹기 문화를 이끌고 있다.

이후 울주군 외고산에 거주하던 옹기장인들을 중심으로 주민화합의 장을 마련하고자 소규모 옹기 축제가 시작됐다. 해마다 규모가 커지면서 2003년 ‘온양옹기축제’, 2004년 ‘외고산옹기축제’, 2006년 ‘울주외고산옹기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2010년에는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를 개최하기도 했고, 2011년부터 ‘울산옹기축제’로 축제명칭을 변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각양각색의 옹기가 즐비한 옹기마을 자체도 큰 볼거리지만, 축제 기간 만날 수 있는 크고 작은 공연들은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특히 올해는 12개 읍·면 주민자치 프로그램 공연팀이 출연하는 ‘주민자치 공연단’ 프로그램과 옹기마을 할머니들이 주도하는 할매봉사단 ‘꽃보다 할매’, 어린이날,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함께 체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민 참여를 대폭 강화한 것이 이번 축제의 특징이다.

울산옹기축제는 ‘2023 제11회 대한민국 축제콘텐츠 대상’ ‘축제예술·전통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매년 증가하는 옹기 축제 관람객 숫자가 증명하듯 K-콘텐츠로서 옹기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생각된다. 한 번 꿈꿔 본다. 울산을 대표하는 ‘옹기’의 매력에 빠지는 세계인이 많아지길, 덕분에 옹기마을의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길. 30여가구가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의 울림이 K-컬처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전 세계를 관통할 수 있길 희망한다.

이춘근 울주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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