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윤 사회부 기자

지난 9일 울산 중구 한 지역주택조합의 토지 수용을 위한 강제집행 현장.

현장에는 경찰과 소방 관계자 등 수십명이 긴장상태로 허허벌판에 남은 집 한 채를 둘러싸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해당 집에 거주하는 A씨는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걸쇠를 걸어 잠근 채 “내 집에서 내가 사는데 무슨 죄냐.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고 버텼다.

경찰 위기협상팀이 협상을 이어가고, 혹시 모를 화재 발생 우려로 긴장상태가 이어졌다. 현장 상황은 약 2시간 뒤 경찰 등이 문을 강제로 열어 A씨를 밖으로 데려나오며 종료됐다.

민간에서 실시하는 지역주택조합이 사업 부지의 95% 소유권을 확보하면 나머지 5% 부지에 대해서는 강제 수용이 가능해진다. 해당 지역주택조합은 마지막 남은 A씨의 집을 편입하기 위해 수차례 협의에 나섰으나, 보상에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강제수용에 들어갔다.

조합 관계자는 “A씨가 무리한 보상을 요구해 감정평가 결과 금액대로 집행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A씨로 사업 지연을 겪으며 500여명의 조합원들의 고통은 물론 공사비로 수백억원대 손해도 보고 있다”고 강제수용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A씨도 막다른 상황임을 호소했다. A씨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고 돈(보상금)으로 이제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며 “이제는 땅을 팔지 않고 떠나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휘발유까지 뿌리며 수십명의 경찰과 소방, 법원 집행관 등과 대치하던 A씨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는 아수라장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양측 모두 최후의 수단으로 꺼내 든 강제수용과 휘발유 대치 속에서 잘잘못을 가리는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병원으로 곧바로 이송된 A씨는 경찰에서 4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새벽, A씨는 다시 학성동 집으로 향했다. 강제 집행이 이뤄져 흙으로 덮인 집의 한 구석을 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식을 들은 관할 구청과 A씨의 가족이 함께 설득에 나섰으나, A씨는 집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강제집행으로 어머니가 물려주신 항아리가 깨졌다는 A씨의 말과 함께 A씨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이제 모른다.

울산 곳곳에서 재개발과 재건축이 계속되고 있다. 이주와 보상 등 수많은 이해관계가 엮인 현장에서 또다른 A씨가 어디에서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재개발 등 사업의 필요성과 차질없는 추진이 중요한 만큼 합리적 설득과 대안 마련도 중요해 보인다.

강제집행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통해서라도 물꼬를 튼 사업이 순항리에 이뤄지길, A씨도 보상을 받고 다시 새 보금자리를 찾아 삶을 이어나갈 수 있길 빌어본다.

정혜윤 사회부 기자 hy040430@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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