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혁 유니스트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부터 공급자 중심의 현행 대학교육을 수요자 중심으로 개혁하도록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전공선택에 대한 경직성이 미래지향적 인재 양성의 걸림돌이라면서 전공 간의 칸막이를 허물고, 학교 간에도 벽을 허물어 교육 수요자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주문을 했다. 하지만 교육의 벽 허물기가 교육개혁의 기본 방침이라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교육개혁의 기본 방침은 산업화시대의 낡은 교육모델을 대체할 AI시대의 새로운 교육모델을 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부는 대학혁신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2026년까지 30개 지방대학을 선정해 5년간 대학당 1000억원씩 지원하는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 후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대학혁신은 지방대학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둘째, 신청 가능한 지방대학 166개 중에서 30개만 선정해 지원하고 나머지는 방기하려는가? 셋째, 5년간 지원한 후의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넷째, 대학별로 백가쟁명식 혁신안을 시도하게 해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가?

윤 대통령은 ‘과거에는 교사의 지식을 학생에게 전수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했다면 지금은 클라우드에 있는 지식을 활용,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돼야 한다’ ‘교사 개념도 티처에서 코치, 컨설턴트, 헬퍼 이런 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등의 언급으로 대학개혁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학습자 주도적 능동학습 모델이다. 하지만 교육부 입장은 특정한 방향의 혁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자율적으로 제시한 혁신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학들이 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율에 맡겨야 한다. 혁신적 교육 모델로 주목받는 미네르바대학의 특징 중 하나는 ‘티칭 없음 (No Teaching)’이다. 지식습득은 학습자의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대체하고 ‘코칭(Coaching)’을 통해 지식응용에 초점을 맞춘 온전한 능동 학습(Fully Active Learning)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바드대학과 스탠포드대학에서는 최근에 흥미로운 교육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바드의 CS50 (컴퓨터 입문)은 교수가 대형 강의실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 후 소규모로 분반해 조교들이 실습에 대한 코치를 담당한다. 이 강좌를 무크 형태로 공개하자 전 세계에서 4만명이상이 수강하고 유튜브에서는 구독자가 1400만명에 이른다. 여타 무크와는 달리 수백명의 조교를 동원해 코치 역할을 하게 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향후에는 AI 조교를 퀴즈와 과제 채점 등에 적극 활용해 조교들의 업무를 분산시킬 계획이다. 스탠포드에서 매년 1600여명이 수강하는 CS106A (Programming Methodology)의 전반 6주 강의를 일반인들도 온라인으로 등록해 수강할 수 있게 한다. 무크가 아닌 실시간 강좌이므로 올해에는 2만2000명으로 정원을 두었고 조교의 비율을 캠퍼스와 마찬가지로 10대 1 로 유지하기 위해 2100명의 자원봉사자를 활용하고 있다. 상기 두 강좌의 사례를 보면 명문대학의 인기 강좌를 정원 제한없이 수강할 수 있게 한 것은 티칭과 코칭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캠퍼스내에서 뿐만 아니라 시간 및 공간적 장벽을 넘어 누구나 수강할 수 있게 했다. 두 강좌가 매우 다른 방법을 채택하고 있지만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방향성은 동일하다.

기존의 강의식 교육모델을 유지하는 한 학과, 학부, 대학의 벽을 허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세부 전공별로 전문화된 교수의 철밥통 혹은 이권 카르텔 보다는 티칭만 있기 때문이다. 상기의 사례에서 보듯이 티칭과 코칭을 분리하면 정원의 장벽은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다행히도 이 같은 미래교육 모델은 극히 초보 단계에 있으므로 한국에서 AI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자기주도적 능동학습 모델을 선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임진혁 유니스트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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