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물은 양날의 칼과 같지만
잘 활용하면 결실 이뤄낼 수 있어
순리대로 흐를 수 있게 잘 관리를

▲ 권영해 울산문인협회장

지난 17일은 제헌절이었다.

1948년에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공포한 날을 기리고자 국경일로 정하고 법의 중요성과 준법정신을 장려하기 위해 국가적 행사로 기념하고 있다.

‘법(法)’은 ‘물(水)’과 ‘가다(去)’가 합쳐진 회의(會意)문자이다.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입법하고 운용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며 늘 낮은 곳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수행한다. 어떤 생명체든 물이 없으면 온전히 살지 못하며 공장에는 공업용수가, 농작물에는 농업용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물은 평상시에는 조용히 고여 있거나 아늑하게 흐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난 짐승 같기도 하고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바위를 뚫기도 한다.

법도 마찬가지다. 잘 사용하면 평화롭고 안전해지지만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고 구성원들로부터 손가락질받을 수도 있다.

이번 장마 폭우에 전국적으로 많은 산사태가 나고 제방 둑이 무너지는 등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가 속출하여 안타까움을 더한다.

물은 언제나 취약한 곳을 파고든다. 그래서 치산치수는 예로부터 국토보전과 국가 유지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였다.

불이 나서 황폐화한 산은 신속한 조림을 함으로써 동식물이 편히 살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해주고 극한폭우에도 나무뿌리가 토사를 붙들고 있도록 해야 한다. 난개발로 인해 주변이 정리되지 않은 곳이나 이전 홍수로 피해를 입고도 복구되지 않은 곳에는 다시 불행이 닥치지 않도록 조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뭄이 들 때를 대비해 물을 가두는 댐을 만들고 보(湺)를 설치하거나 관정을 파고 농수로와 물꼬를 잘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법이 인간의 일이듯이 물 관리 역시 사람들이 할 일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원칙에 맞게 적용되어야 한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범하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독일의 법학자 옐리네크(Georg Jelinek)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 윤리적 관습이나 도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까지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법이 미치는 범위는 당연히 도덕과 교집합이므로 도덕의 목표와도 부합할 것이다. 물론 불법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나 응징보다 먼저 예방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어 보인다.

법이 약자나 억울한 사람의 아픈 곳을 쓰다듬어주어야 함에도 자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강자의 편에 서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법과 물은 양날의 칼과 같지만 잘 활용한다면 훌륭한 요리를 하는 셰프의 빛나는 칼이 될 수가 있다.

비양심적인 현상이 지속되고 불법, 탈법, 편법이 판치는 도덕 불감증에 빠진 사회 현상이나, 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질풍노도와 같은 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안전불감증에 빠진 현실을 극복하고 대비해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도, 물을 관리하고 이용하는 것도 다 인간의 일이다. ‘법의 길’이 공정과 정의이듯이 이제부터라도 꽉 막힌 곳에 ‘물길’을 제대로 내고 수해에 대비하는 위기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점검과 방비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지금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다툼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법의 운용과 물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비법(秘法)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

물길이 없는 사막에 멀리서부터 관개수로(灌漑水路)를 내고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꾸듯, 법도 범법을 저지른 자에게는 일벌백계로 응징하기도 하지만 약자를 보호하고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는 좋은 일에 더 많은 쓰임이 있기를 바란다.

권영해 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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