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비지원의 황리단길과는 달리
언양읍성은 문화재로 규제대상
주민과 상생할 문화재보호 절실

▲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

언양읍성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문화재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문화재 주변에서의 각종 건축행위 등은 이 법에 따라 규제를 받는데, 예를 들면 ‘문화재영향검토구역(2010년 이후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중 성벽에 접한 4차선 도로변 3구역의 경우 건축물 최고 높이는 8m(평지붕 기준)를 넘을 수 없다. 언양읍성 주변 신개발지에 높은 건물이 없는 이유다. 장차 언양읍성 정비로 성내에 들어설 공공건축도 같은 규제를 받는다. 이 규제는 ‘사업성’이나 활용면에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웃 경주 ‘황리단길’은 사정이 좀 다르다.

처음 언양읍성이 현재 위치에 토성으로 축조된 것은 고려말인 1390년이지만, 이후 꾸준히 증축되어 서기 1500년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읍성의 표준형으로 칭송받는 언양읍성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피해가 컸는데, 그 일단이 조선 후기 고지도에 잘 드러나 있다. 즉, 임란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관아는 동헌과 객사 정도만 복구하고, 성문조차 초가를 덮는 지경이었다. 조선시대 언양은 고을의 위계가 가장 낮아서 종6품 현감이 다스렸다. 그러나 고을의 위계와 상관없이 언양은 군사적으로 꽤 중요한 고을이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변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군사적 가치를 지닌 언양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축성술의 교과서로 일컬어질 만큼 가장 발달된 성곽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즉, 남천강변 평지에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자리 잡고, 성벽 밖으로는 바닥에 말뚝을 박고 물을 채운 해자를 둘렀다. 성벽 규모는 둘레 3064자(약 1500m)로 사방에 성문을 두고, 성문과 성곽 모서리 사이에는 각각 치성을 설치했다. 각 모서리에도 치성이 있으니 도합 12개가 된다. 격이 낮은 고을이지만, 평지성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4대문에는 모두 옹성을 덧붙였다. 성문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헌산지(1757)>를 보면 이들 시설 외에도 성벽 위에 모두 834개의 여장이 있었고, 성벽 높이는 13자, 성내에 우물도 4곳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언양읍성은 조선 전기 세종, 성종 대에 걸쳐서 도입된 읍성 관련 핵심 시설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읍성의 교과서라고 불리고 있다. 그렇지만 읍성의 표준 모델인 언양읍성도 1895년의 을미년 7월15일의 칙령에 의해 관련 관련 제도가 폐지되면서 읍성으로서의 생을 마감했다. 이후 1908년에는 의병 항쟁 과정에서 성내 관아 일부가 불탔고, 식민지 초기인 1914년에 언양군은 폐지되어 울산군에 합쳐졌다.

이런 과정 속에서 언양읍성의 관아시설은 식민지 지배시설로 바뀌고, 객사와 동헌 등은 언양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 성벽도 큰 상처를 입었는데, 1923년부터 1927년까지 추진된 남천 호안공사에 언양읍성 동남쪽 일대의 석재가 반출되면서 본격적인 훼손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양읍성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66년 12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어 더 이상의 훼손은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은 발굴조사와 함께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20년 이상 조금씩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언양읍성과 관련된 가장 큰 이슈는 ‘현상변경허용기준’이다. 지난 2000년부터 문화재보호구역 외곽 500m 이내 범위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정하고 이 구역에 대한 영향검토가 제도화되면서 규제가 시작되었다. 언양읍성의 경우 성벽이 국가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여기서 사방으로 200m 이내는 모두 규제 대상인 1~7구역으로 고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웃 경주는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고도보존법’)’의 적용을 받아서 규제도 받지만 주택 수리 등의 ‘주민지원사업’을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다. 유명한 경주 ‘황리단길’의 성공 배경에는 바로 이 제도가 있다. 황리단길이 있는 황남동 일대는 ‘역사문화환경보존육성지구’로 지정되었고, 이 지구 내의 주거환경개선에는 국비지원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언양읍성지구의 문화재적 가치가 경주 황남동 보다 못하다는 증거는 없다. 이렇게 보면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 도심 소재 국가지정문화재(읍성)에도 고도보존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 주변의 역사문화환경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지만 모든 부담을 해당 구역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에만 지워서는 곤란하다. 황리단길을 보면서 언양읍성 보존을 생각해 본다.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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