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고발센터 맞나요"라는 전화를 오늘도 받는다. "여기는 소비자고발센터가 아닌 소비자보호센터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냥 넘어가지만 "그러면 소비자 고발센터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되묻는 시민도 간혹 있다.
 "고발센터냐"는 문의를 받는 필자도 "고발"이라는 어감에 대해 유쾌한 기분을 갖고 있지 않지만, 국민들의 법관념이 이러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TV뉴스에서도 "카메라고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고발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발의 사전적인 의미는 "고소권자인 피해자 이외의 사람이, 수사 기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고 수사 및 범인의 기소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소비자보호센터에 문의하는 국민들은 민사절차로 만들어진 제도나 상담 절차를 형사절차로 오인했거나 혼돈한 것이다.

고발과 전통적 법관념
 옛날 국민들은 관에 호소해 분쟁해결을 하는 경향이 강했다. "관에 호소한다"는 것은 민형사의 구별 없이 그냥 시비곡직을 판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런 전통적 태도가 그대로 남아 있어 의례 법에 호소한다는 것이 형법에 호소해 형사적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유가의 국가관인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도 국민들이 국가에 호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고발이라는 용어는 적절한 단어가 아니지만 우리는 국민들의 법관념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민사절차로서 만들어진 제도나 상담절차를 형사절차나 사법절차로 오인하거나 구별하지 못하고 고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같이 전통적 법관념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고발과 시장 실패
 민·형사가 분리되지 않은 국민들의 법관념과 달리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비자보호센터의 중재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행정기관의 행정 처벌이 아니라 그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것이다.
 한국기업들의 제품이 대체로 내수용보다는 수출용이 가격이 싸고 품질이 우수한 것은 세계시장이 국내시장보다 대체재가 많아 수요가 국내시장보다 탄력적이기 때문이다. 즉 세계시장에서 기업들간의 경쟁이 국내시장보다 치열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이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적인 시장은 최소한 단기적인 시야에서만큼은, 시장을 믿고 그대로 내버려두자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보호에 소홀하고 소비자들로부터 나쁜 평판을 받았던 기업은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시장에서 대부분 퇴출당했다.
 서울에 소재한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선진국처럼 소비자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소비자주권에 입각한 자율적인 능동적인 소비자를 가정해 명칭을 "소비자원"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그러나 선진국처럼 시장에서 가격 경쟁과 품질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국민들의 법관념이 고발로 표현되는 현실에서는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보가 완전히 노출되어 소비자들이 상품의 가격과 품질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있어 소비자피해가 없는 완전경쟁시장은 이상적인 시장일 뿐이다. 현실적인 시장은 허위·과장 광고, 충동구매가 혼재돼 있다. 합리적으로 비용과 편익을 고려한 선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소비자피해가 항상 발생한다.
 소비자 보호는 고발로 표현되는 시민들의 법관념과 시장경제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제3의 길로써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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