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풍경과 삶 - 8. 호계역
울산 효문역과 경주 모화역 사이
동해선 울산 구간의 마지막 역
복선전철화로 2021년 12월 폐역
박공지붕의 역사는 그대로 보존
소설 ‘미망’·영화 ‘돌아온다’ 등
다수의 문학작품과 영화에 등장
오래도록 회자될 유산으로 남아

▲ 호계역사(虎溪驛舍 108x37㎝, 한지에 수묵, 2023)

호계역은 울산시 북구 호계6길 30(호계동 831-2)에 있던, 효문역과 경주의 모화역 사이, 동해선 울산시 구간의 마지막 역이었다. 호계역은 1922년 동해남부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1950년 무장 공비의 내습으로 역사(驛舍)가 소실돼 1958년 역사를 신축, 준공했다. 2002년 역사를 증·개축했다. 동해선 복선전철화(이설)에 따라 역이 생긴 지 100년 만에 2021년 12월28일 폐역이 됐다. 호계역의 기적 소리는 사라졌지만, 박공지붕을 한 역사는 간이역 건축의 대표 모델로 그대로 보존된다. 역사 앞에 우뚝 솟아 있는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더)와 건물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향나무는 호계역 옛 풍취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호계역이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에 남고, 남게 될 수 있게 된 것은 문학과 영화 때문이다.

◇문학 속에 나타난 호계역

‘내 아장걸음으로 빠져나가던/ 호계역을 지나면서/ 아련한 기억으로 돌아보는/ 세월은 추억이 아니네/ 추억이 아닌 전설뿐이네// 그토록 타보고 싶던/ 칙칙폭폭 차/ 기적 속 흰 연기 위로 나타나는 희미한 얼굴/ 아무래도 몸을 떨게 하는/ 전설뿐이네// 살아있을까/ 봉선화 물들인 내 색시는 살아있을까/ 아직도 내 아장걸음 남아있는/ 호계리 호계역.’ 호계역 대기실에 걸렸던 최종두 시인의 ‘호계역’ 시에서 화자는 아장걸음으로 빠져나가면서 그리운 이를 떠올린다. ‘기적 속 흰 연기’와 ‘봉선화 물들인 내 색시’에 드러난 색상의 대비가 불러오는 애틋함과 그리움 때문에 ‘아장걸음’으로 남는 호계역이 선명하게 각인된다.

‘한 굽이 더 돌아도 아직 먼 호계역/ 종고모 살았다는 이화마을 보이네/ 봄꽃이 흐드러지면/ 생각 많던 고모’ 인용된 이화우 시인의 ‘호계역’ 시조는 봄꽃이 피면 ‘생각 많던’ 종고모를 떠올리는 공간으로서 호계역이다. 이때 호계역은 애틋함의 정서를 일으키는 기능을 한다.

두 편의 ‘호계역’ 시가 개인적 정서를 읊고 있다면, 김원일 소설 <미망>(未忘)은 분단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념의 갈등이라는 시대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망은 ‘잊지 못함’이란 뜻이다. 소설 줄거리를 요약하면, 소설 속 화자인 손자의 할머니는 모화에 사는 늙은 홀아비와 결혼해 화자의 아버지를 낳는다. 아버지는 울산농업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이후 아버지는 농민운동과 야학 활동을 하고, 광복 후는 좌익운동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고초를 겪는다. 할머니는 호계역전에서 식당을 하는 화자의 고모네 집으로 피신하고,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울산으로 내려와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아 당시 울산군청 앞에서 멸치포 장사를 한다. 이후 말년에 손자 집에 함께 살게 된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이 일어나고 할머니가 돌아간다. 할머니의 유품에서 아버지의 보도연맹 가입증이 발견된다. <미망>은 분단 이후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 희생된 인물의 이야기로 울산이 소설 배경의 중심이다. 그 가운데 호계역 앞 식당 고모댁은 주인공 할머니의 거주지였다. 소설 <미망>은 1984년 4월21일 KBS의 TV문학관 130화로 방영됐다.

◇영화에 나타난 호계역

울산과 울주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돌아온다’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뛰어난 작품성을 바탕으로 세계 8대 영화제 중 하나인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금상을 수상했다. 영화 ‘돌아온다’는 그리운 사람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꿈꾸는 이들이 모이는, 외딴 시골 막걸릿집을 배경으로 그리움과 기다림의 인간애를 보여준다. 배경이 된 영남알프스 간월재와 간월산, 대곡천과 반구대, 상북면 궁근정리 일대와 들판, 호계역 일대, 언양시장 풍경 등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현됐다. 이 중 호계역은 세 장면으로, 첫 번째는 여주인공 주영이 막걸릿집을 찾아올 때 내리는 역으로 영화 시작 장면에 나온다. 이어 주영이가 울산을 떠나가고자 할 때 기차와 역의 모습이 나온다. 주영은 막걸릿집 변 사장의 죽은 아들 여자친구인데, 아들의 유골함을 가지고 있다. 다시 돌아온 주영은 변 사장과 함께 간월산 아들의 돌무덤에 유골함을 묻는다. 세 번째는 변 사장의 아버지가 호계역 앞 샘물 목욕탕에서 나와 행방불명되는 장면이다. 남자 주인공 변 사장이 가슴에 품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애정과 회한은 호계역 일대에서 벌어진 이 사건에서 비롯됐다. 영화에서 호계역은 떠남과 만남의 공간으로, 막걸릿집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공간으로 설정됐다. 영화 ‘돌아온다’는 2017년 개봉됐는데, 그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언론과 관객에게 화제가 됐다.

이 영화를 두고 2017년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프랑스 배우 페니 코텐콘(Fanny Conttencon)은 “마치 빗물에 옷이 젖는지도 모르듯 밀려오는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런 찬사를 받은 영화 ‘돌아온다’는 안타깝게도 홍보 부족과 울산의 무관심으로 개봉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라면 문학은 진실의 기록이다. 울산의 역사와 삶의 기록인 ‘호계역’은 문학과 영화 속에 등장하면서 진실과 정서와 기억의 문화유산으로 남게 됐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

※QR코드를 찍으면 우리네 역사와 추억을 가득 품은 호계역의 풍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인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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