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걸수 수필가

가을이 오면, 영남알프스 중심부 신불산 왕방재(간월재)는 은빛억새의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이 아름다움 속에는 8·15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가슴 아픈 빨치산의 역사가 서려있다. 필자(1956년생)가 어렸을 적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들은 것들을 이야기로 풀어 낸 것이 강인수 장편소설 ‘영남알프스’다.

줄거리는 동래정씨 동촌리 종갓집 삼형제는 서로 삶이 엇갈린다. 인혁은 일본 동경 유학생으로 좌익으로 빨치산이 된다. 다 같이 잘사는 게 그들의 신념 이였다. 인혁은 빨치산 간부로 활동하다 체포 석방되나 얼마 못 살고 죽는다. 둘째 인현은 인혁이가 빨치산이 되자 면서기를 그만두고 전투경찰이 되지만, 공비토벌 중 전사하고, 막내 인경은 보도연맹 관련 행방불명이 된다.

인혁의 작은 집은 산 너머 행촌리다 사촌형제는 셋이다. 첫째 인국은 경찰이 되었고, 둘째, 딸 분영이는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밤 중 빨치산 습격으로 동생 인주를 감싸다 빨갱이가 휘둘린 개머리판에 맞아 스물 살에 죽고, 그 때 막내 인주 열두 살 이었다. 정인주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인물이며, 이 소설 속의 화자다.

또 다른 중심인물은 행촌리 사람들이다. 강영기는 강씨 종손이며, 아들 갑수는 울산농고를 나와 금융조합을 그만두고 인혁을 따라 빨치산이 되었다. 갑수형제로는 여동생 춘경과 남동생 중수가 있었고, 한 동네 삼촌과 사촌 진수가 있었다. 진수는 군에서 한 쪽 팔을 잃고 의사사 제대를 하여 뒤늦게 가정을 이뤄 대준이를 낳았다. 대준이가 행촌리 종손인 셈이다.

고헌산부대 갑수대장은 보급투쟁에 나서 외딴집 소를 몰고 나왔다. 주인영감이 이 소는 우리 소가 아니고 배내기 소라는 하소연에도 대원들은 저리 비껴하며 영감을 확 밀쳤다. 다음 날 고헌산에서 소를 도살 해체, 분리하고 육포를 떠서 나뭇가지와 바위에 말렸다.

갑수는 아영이와 바위굴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영이를 배웅하다. 헤어짐이 아쉬워 눈밭에 누웠다. 살포시 안으니 아영은 온몸을 달달 떨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나는 이왕 죽을 몸 어떻게 던 아영에게 내 애를 베개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경찰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터에서 “이놈이 빨갱이 하길수요 때릴 사람 때려 보시오” 한 남자가 몽둥이로 후려쳤다. 바로 꼬꾸라졌다. 무슨 큰 원한이 있소? 우리 아버지가 소 안 빼 앗길라고 버티다 빨갱이에게 맞아 죽었소. 그 후 하길수는 공비소탕 공로로 살려 주었다. 1953년 겨울 공비토벌 때 강영기는 아들 시체를 확인하라는 출두 명령이 떨어졌다. 한 걸음에 달려가 거적때기를 들쳐보니 갑수가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내 아들 갑수가 맞다고 했다. 그래야 덜 시달릴 것 같았다. 공동묘지에서 한 번 더 확인 해 보았다 갑수가 아니었다. 다음 날 갑수가 죽었다는 소문이 확 돌았다.

정인주 노인은 배냇골에서 양 집안 관련 자손들과의 화해 장을 만들었다. 저녁 때 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낫 선분이 여러 사람 앞에 정중하게 “이종수 아들 강대명”이라고 인사를 올린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버지 강갑수는 신불산 공비소탕 때 대구팔공산으로 도망쳐 가명 이종수로 살다 5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영은 대명이가 여덟 살 때, 빨갱이 하길수에게서 갑수의 행방을 알아냈다고 했다 그 순간 강진수 노인은 내 아들 대준이가 종손인데, “빨갱이 새끼가 종손이 된 단고” 소리치며 도깨비 같은 갑수아들 이놈! 하며, 칼을 들고 한 바탕 소란을 피우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 근 현대사의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주제는 ‘전쟁과 사랑’, ‘용서와 화해’를 위한 먼저 가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강걸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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