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홍콩 프린지클럽

英 식민지 시절 유제품 보관창고
리모델링 뒤 문예공간으로 변신
내부 공연장·지하극장 등지에서
장르 넘나드는 이색 공연 펼치고
갤러리선 신진 작가들 위한 전시
공간 원형 최대한 보존한 ‘유산’
130년 세월의 흔적 찾는 재미도

▲ 음식점과 카페, 클럽 등이 모여 한국의 이태원이라 불리는 홍콩 센트럴의 란콰이퐁 옆에 지어진지 130년 넘은 유제품 창고를 리모델링한 공연, 전시장 ‘프린지 클럽’이 있다.
▲ 광둥식 식당 ‘NOVE at the Fringe’.
▲ 간단하게 요기하고, 휴식할 수 있는 프린지 볼트.
▲ 프린지 데어리에서의 공연 모습.

‘프린지 클럽’(Fringe Club)은 홍콩에서 공연과 전시, 미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클럽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과 카페, 클럽, 술집이 모여 홍콩의 이태원이라 불리는 센트럴의 란콰이퐁 바로 옆에 있다. 프린지 클럽은 번화가 삼거리 경사로에 세워졌지만, 앞에서는 나지막한 2층 건물로 보인다. 하지만 뒤로 돌아가면 마치 다른 건물인 것처럼 4층 건물의 자태가 드러난다. 전형적인 경사지 건물의 모습이다. 외벽도 영국 고전주의 양식을 닮은듯 하지만, 홍콩 양식도 결합한 콜러니얼 양식으로 외벽도 흰색과 붉은색 벽돌로 독특하게 치장했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이 건물에서 아마추어와 전문예술인이 융합하며 매일 공연과 전시를 펼친다.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 프린지 클럽

프린지 클럽은 홍콩이 영국 식민지 시절이던 1892년 우유 등 유제품을 생산해 유럽인에게 판매하던 ‘Dairy Farm’의 보관창고로 쓰던 건물이다. 1970년대까지 원래 용도로 사용됐지만, ‘Dairy Farm’이 홍콩 정부와 이곳을 외곽지역의 토지와 교환하면서 빈 공간이 됐다.

버려진 공간이 아쉬웠던 비영리단체 ‘홍콩 프린지’는 1980년대 초반 홍콩 마사회의 후원으로 공간 재정비에 나섰다. 이들은 아마추어부터 전문 예술단체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축제를 준비했다.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지난 1982년부터 1998년까지 프린지 클럽에서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후에도 시티 페스티벌 등 수십여차례 축제도 진행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8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연중 공연과 전시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홍콩 도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문화 다양성을 쌓아가고 있다.

프린지 클럽은 지금도 건물 전면에 새겨진 예술과 사람이 모여 프린지 클럽을 만들어 간다는 슬로건처럼 지역 아티스트는 물론 젊은층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중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시와 공연

프린지 클럽의 갤러리와 지하극장, 공연장 프린지 데어리, 자키클럽 스튜디오 극장 등에서는 1년 내내 예술을 통해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실험적 예술이 펼쳐진다.

갤러리 ‘Anita Chan Lai-ling Gallery’는 창고 차고와 하역장으로 사용하던 곳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하역장 공간의 이점을 잘 살려 탁 트인 창문이 작품 감상에 제격인 갤러리다. 이런 공간에서 신진 작가 육성을 위해 짧게는 10일, 길게는 2주까지 개인전이 이어진다.

우유 저장고가 공연장으로 변신한 ‘프린지 데어리’에서는 재즈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공연장 한쪽에는 작은 바도 있어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리모델링을 했지만, 1910년대 만들어진 바닥 장식과 나무 창틀, 100년이 넘은 선풍기 등은 옛 모습 그대로라 마치 과거로 돌아가 음악을 즐기는듯한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지하극장에서는 클래식 공연과 영화 상영회, 강연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중국 전통 찰현악기 얼후와 서양 클래식 악기 공연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공연이 주로 열린다. 이는 프린지 클럽이 예술가에게 단순히 공연장을 빌려주는 것을 넘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해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얼음 저장고로 사용했던 흔적이 있는 지하 공간의 프린지 볼트는 주변 직장인이나 프린지 클럽을 찾은 이들이 간단하게 요기하고, 휴식할 수 있도록 마련된 카페다. 지역 디자이너가 제작한 소품 등을 판매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미쉐린 3스타 쉐프 그룹이 운영하는 광둥식 식당도 있다. 이곳의 벽면에는 프린지 클럽에서 첫 전시를 연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어 갤러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아카이브 역할을 한다.

◇따로 또 같이 연결된 공간들

프린지 클럽은 유제품·육류 창고였던 기존 용도 덕분에 오래됐지만, 천고가 높아 탁 트인 공간을 자랑한다. 게다가 각각의 공간은 개별 출입문을 통해 드나들 수도 있다. 다채로운 예술 프로그램과 함께 130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건물 내부를 살펴보는 것도 프린지 클럽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다.

홍콩 프린지는 여러번 보수를 하면서도 공간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한 기능적인 부분을 손보는 데 집중했다. 이에 공간은 그 자체로 역사성을 가지며 지난 2009년 홍콩의 1등급 유산으로 지정됐다.

빈티지한 모습의 내외부 덕분에 프린지 클럽은 드라마나 영화, 뮤직비디오 촬영장으로도 인기 만점이다.

1994년 개봉한 장국영 주연의 영화 ‘금지옥엽’도 프린지 클럽에서 촬영됐다.

프린지 클럽 관계자는 “프린지 클럽은 예술가들이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면서 “이곳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누구나 예술을 감상하고 즐기며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서정혜기자 sjh3783@ksilbo.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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