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홍콩 복합문화공간 ‘더 밀스’

홍콩 대표 방적기업 난풍그룹
산업쇠락으로 문닫았던 공장
직접 리모델링 ‘더 밀스’ 개관
단순한 소비공간서 한발 나아가
섬유 매개 전시·체험 공간으로

섬유 스타트업 업무공간 지원
홍콩 섬유산업 역사 갤러리도
옛 공장모습 일부 그대로 보존
방적공장의 정체성 유지 노력

▲ 홍콩 북부 췬완 지역의 방적공장을 리모델링해 탄생한 복합문화공간 ‘더 밀스’

현재 홍콩은 국제금융 중심지로 입지를 굳혔지만,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도심 외곽에는 전자·직물 등을 취급하는 공장만 들어서 있었다. 이 공장들마저도 인건비가 싼 중국 본토로 이전하자, 공장부지는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일부에는 넘쳐나는 홍콩 인구수용을 위한 주거단지가 들어섰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방치됐다. 홍콩 중심부 센트럴에서 지하철로 30분 남짓 거리의 ‘췬완’에도 방치된 방적공장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방적공장을 운영하던 난풍그룹은 마냥 폐허로 주변이 변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공장을 리모델링해 쇼핑과 전시, 체험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 더 밀스에서는 옛 방적공장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계단 공간을 비롯해 분해해 벤치로 사용하고 있는 목재 문, 리셉션의 벽면 장식으로 활용된 철재 출입문 등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더 밀스에서는 옛 방적공장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계단 공간을 비롯해 분해해 벤치로 사용하고 있는 목재 문, 리셉션의 벽면 장식으로 활용된 철재 출입문 등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산업 중심에서 문화 거점으로 변신

난풍그룹은 췬완지역에 1960~70년에 걸쳐 공장 3개 동을 세웠지만, 사업구조를 전환하며 2008년 결국 모두 폐쇄했다. 폐쇄된 공장은 창고 외에는 별다른 쓰임새를 찾을 수 없어 사실상 방치 상태였다. 하지만, 홍콩 산업화를 이끌었던 방적산업 역사를 기억하고 싶은 시민 제안이 늘어나며 난풍그룹은 리모델링 후 지역사회에 환원키로 결단을 내렸다.

4년에 걸친 리모델링 작업 끝에 지난 2018년 복합문화공간 ‘더 밀스’(The Mills)가 탄생해 지역사회의 품에 안겼다.

회색빛의 더 밀스 외관은 공장이나 창고로만 보인다. 하지만, 내부는 자연채광이 고르게 들어오는 공간에 다양한 공방과 상점이 자리 잡았다. 공장 건물이라 창문을 크게 만들고, 천장도 뚫어 공기 순환은 물론 공장 특유의 삭막하고 칙칙한 이미지도 벗겨냈다.

산업화 시기에는 공장 3개 동이 모두 분리돼 있었지만, 건물 사이 벽체를 뚫고 계단과 다리를 놓아 어디서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나로 리모델링했다. 벽체에는 H빔을 덧대 안전성을 높이고, 옛 공장 입구에 있던 출입문도 리셉션 벽면을 장식하는 데 재활용했다. 공장의 오래된 나무문 역시 벤치로 만들어 쓰는 등 옛 모습을 곳곳에 간직해 공장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가고자 한다.
 

◇쇼핑 넘어 전시·체험 녹아든 공간

더 밀스에는 30여곳의 공방과 상점, 식당이 있다. 대다수 공간이 지역 작가나 브랜드가 제작한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공간이다. 친환경 관련 상품을 제작·판매하거나 섬유 관련 스타트업 기업에는 입주 비용 할인 혜택도 있다.

입주 공간은 개별 상점 형태로 운영되지만, 단순히 소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소비자가 ‘섬유’라는 이 공간이 가진 유산을 매개로 여가를 보내며 체험하며 소비하고, 경험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공방형 매장에서는 신진 디자이너의 작품 또는 제품을 만나볼 수 있고, 소비자가 직접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먹고, 마시고, 사용할 수 있다.

▲ 더 밀스에서는 옛 방적공장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계단 공간을 비롯해 분해해 벤치로 사용하고 있는 목재 문, 리셉션의 벽면 장식으로 활용된 철재 출입문 등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더 밀스에서는 옛 방적공장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계단 공간을 비롯해 분해해 벤치로 사용하고 있는 목재 문, 리셉션의 벽면 장식으로 활용된 철재 출입문 등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옛 방적공장의 정체성을 살려 헌 옷을 재생해 새로운 가방이나 옷으로 재탄생시키는 공방도 있다. 어린이가 중국 전통탈을 만들고 경극을 직접 배워보는 공간도 인기가 높다.

전시를 볼 수 있는 갤러리도 더 밀스의 문화 체험 다양성을 높인다. 난풍그룹의 전신인 ‘Nan Fung Textiles’의 창립자 이름에서 따온 ‘첸 파운데이션 갤러리’가 바로 그곳이다. 이 갤러리에서는 홍콩 섬유산업을 기록물과 기계, 방적 제품을 통해 살펴보고, 방적의 원리를 배우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바로 옆 갤러리에서는 연중 섬유 문화에 얽힌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 더 밀스에는 지역 디자이너들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방이 많다. 사진은 소품공방 ‘Stay Sweet and Keep Smiling’
▲ 더 밀스에는 지역 디자이너들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방이 많다. 사진은 소품공방 ‘Stay Sweet and Keep Smiling’

◇반려동물에게마저 열린 공간

쇼핑·전시·체험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더 밀스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섬유 제품에 관심이 있다면 체험 정도가 아니라 섬유 기반 스타트업 기업을 만들 수 있도록 업무공간을 제공한다. 게다가 섬유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장비를 갖춘 실험실에서 시제품까지 마음껏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심지어 홍콩에서는 드물게 반려동물도 쉽게 출입이 가능하다. 목줄을 하고 위생과 안전을 위한 몇 가지 수칙만 지킨다면 상점과 카페, 음식점, 전시 공간 등 실내외 어디든지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다.

▲ 섬유 관련 스타트업을 위해 마련된 공용 업무공간.
▲ 섬유 관련 스타트업을 위해 마련된 공용 업무공간.

물론 처음부터 반려동물 친화 공간은 아니었다. 더 밀스로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하고 누구나 경계 없이 자유롭게 즐기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게 됐다. 이런 이유에서 주말이면 어린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가족부터 중년의 부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이 찾는다.

옛 방적공장 근로자도 더 밀스에 가면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공장으로 사용될 때 이용했던 계단 일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역사 간직의 의미이기도 하면서, 청춘을 바친 근로자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다. 변모한 공간을 느낄 수 있도록 이들을 초청한 축제도 매년 열고 있다.

▲ 다양한 소재의 리사이클링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Fabrica X’.
▲ 다양한 소재의 리사이클링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Fabrica X’.

더 밀스의 창립자인 바네사 청 난풍그룹 전무이사는 “더 밀스는 방문객에게 단순히 장소와 쇼핑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지역사회에서 소속감과 결속력을 갖게 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공간이다”면서 “젊은 예술 애호가들이 미적인 것 이상을 느끼고 체험하며, 상호 교류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콩=서정혜기자 sjh3783@ksilbo.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