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형 변호사

한글날 덕분에 제법 긴 연휴를 지낸 다음 날, 언론 보도에서 우리나라 사상 최초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는 보도와 함께 관련 과학기술계가 긴장하면서도 맞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몹시 충격적인 기사에 접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라면 무엇보다 과학기술계에 대한 예산 삭감으로 직결되는 것이라 할진대, 과학기술 분야를 포함한 이공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글쓴이에게도 관련 기사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요, 대낮에 웬 홍두깨비 소린가’ 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그나마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원천은 과학기술에 말미암은 것이고, 글로벌 경쟁시대에 있어 과학기술에서 우리보다 앞선 국가를 따라잡고 우리를 추격해 오는 후발 국가와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점증하는 연구개발 투자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더구나 4대 과학기술원에 대한 주요 사업비 삭감으로 상징되는 작금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 삭감 사태는 ‘과학기술 중심의 국가운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현 정부의 스탠스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세계열강이 앞다퉈 우주강국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볼 때 우주강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방향에서 볼 때도 시대착오적인 조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부가 정책변경에 따른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고, 비난 화살을 예상하면서도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 삭감을 들고 나온데는 그만한 이유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또 국민세금으로 집행될 연구개발 예산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또한 과학기술계가 국가 연구개발 예산에 목매고 국가 공모사업 당선에만 안주해서는 투자에 부응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국가예산에 의한 효율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만큼, 이를 둘러싼 자성의 목소리도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이와 관련하여 국가 연구개발에 대한 공모사업을 독점하는 카르텔이 있고, 국가 공모사업을 통해 지원되는 사업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학계의 날선 비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선 안된다. 아무리 긴축예산 기조에다 시급성에 따른 국가예산 배정의 우선순위가 있고 과학기술계의 부조리한 카르텔이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국가발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계의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은 국가의 앞날을 염려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고 동의할 수 없다.

특정 집단의 카르텔화가 의심된다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실사(實査)를 거쳐 옥석을 가려야 할 일이지, 과학기술계 전체를 옥죄는 비합리적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쪼록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을 중심으로 정부 관련 부처는 과학기술계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대한 학계와 산업계 그리고 일반 국민 등의 우려에 귀 기울여 국정 최고책임자가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 삭감 방안에 대한 재고를 결단하도록 발상의 전환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지방정부 또한 이러한 문제가 중앙정부 소관이라고 먼 불 보듯 해서는 안 될 것이고, 특히 지역 내 유일한 국립 고등교육기관이자 4대 과학기술원의 하나인 UNIST를 두고 있는 울산에서도 지역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수렴하여 중앙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게을리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세계 석학들도 우리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 삭감 정책에 우려하고 있다.

권오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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