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홍콩 도심 문화공간 ‘타이쿤’

英 식민지 시절 치안기관 밀집
1980년대초 사법부 철수 시작
2006년 감옥 이전하며 공동화
정부가 주도해 재활성화 나서
2만7900㎡ 부지 내 18개 건물
문화활동·창작·교육 공간 활용
‘문화’ 키워드 바탕으로 시너지
공간이 가진 역사 기억하기 위해
곳곳 옛모습 유지·전시관도 마련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존상 우수상

▲ 타이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막사 블록’(Barrack Block)에는 타이쿤의 역사를 소개하는 ‘헤리티지 갤러리’와 상점, 방문자 센터 등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홍콩 센트럴의 명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와 바로 이어진 곳에 문화공간 ‘타이쿤’(TAI KWUN)이 있다. 타이쿤은 1941년 영국 점령 이후부터 지금까지 홍콩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장소다. 이곳은 식민지 시절 경찰서와 구치소 등으로 이용돼 오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도심 속 문화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타이쿤은 홍콩 센트럴의 명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 타이쿤은 홍콩 센트럴의 명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식민지 홍콩의 ‘법과 질서’ 중심

1841년 홍콩을 점령한 영국은 센트럴 지역을 ‘빅토리아 시티’로 이름 붙이고 도시 건설의 축으로 점찍었다. 이어 도시의 법과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홍콩에 치안판사를 임명하고 타이쿤 일대에 치안판사 업무를 위한 건물을 세웠다. 여기에 1944년 홍콩 경찰 창설과 함께 경찰청 건물과 빅토리아 감옥도 추가로 들어섰다. 세월이 흐르며 경찰서, 교도소, 구치소, 치안판사 업무를 위한 부속 건물 등이 하나둘 늘어났다.

결국 이곳은 홍콩의 법 집행을 관장하고 수행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주변 주거지·상업지와 구분 짓는 높은 담장도 세워졌다.

▲ 중앙광장 망고나무 앞에 과거 무기고로 사용됐던 건물에는 음식점 ‘Armoury Terrace’와 ‘Aaharn’이 있다.
▲ 중앙광장 망고나무 앞에 과거 무기고로 사용됐던 건물에는 음식점 ‘Armoury Terrace’와 ‘Aaharn’이 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12월 일본에 의해 심각한 폭탄 피해를 입었고,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이 건물을 사용했다. 중앙 경찰서, 중앙 치안판사, 빅토리아 감옥은 1946년 수리와 재건을 거쳐 다시 문을 열었다.

1980년대 초 사법부 철수를 시작으로 2004년 중앙 경찰서, 2006년 빅토리아 감옥이 이전하면서 텅 빈 공간이 됐다. 빈 공간 활성화를 위해 2006년 협의체가 구성됐지만, 쉽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08년 홍콩 정부와 홍콩마사회가 공동으로 재활성화 프로그램에 돌입했고, 보존을 위한 조사와 발굴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18년 5월 문화공간 타이쿤이 대중에 개방됐다. 현재는 비영리단체 ‘The Jockey Club CPS Limited’가 타이쿤을 운영하고 있다.

▲ 타이쿤 뒤편에는 감옥과 경찰서 등 건물의 과거 용도로 인해 주변 주거지와 분리하기 위해 높게 쌓은 담이 남아 있다.
▲ 타이쿤 뒤편에는 감옥과 경찰서 등 건물의 과거 용도로 인해 주변 주거지와 분리하기 위해 높게 쌓은 담이 남아 있다.

◇18개 건물 ‘문화’를 기치로 시너지

타이쿤은 영국 식민지 시절 건설된 16개 건물과 재활성화 과정에서 새롭게 지어진 2개 건물 등 18개 건물로 이뤄져 있다. 전체 부지면적은 2만7900㎡에 이른다. 이들 건물은 ‘문화’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바탕으로 함께 어우러지고 시너지를 낸다. 이 건물들은 크게 전시와 공연 등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과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위한 공간,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공간으로 나뉜다.

타이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막사 블록’(Barrack Block)은 중심 광장의 남쪽에 있다. 원래는 3층 건물이었지만, 한차례 증축됐고, 지금은 타이쿤의 역사를 소개하는 ‘헤리티지 갤러리’와 갤러리 ‘오라-오라’(Ora-Ora), 세라믹 식기류를 판매하는 상점 ‘loveramics’, 음식점과 방문자 센터 등이 자리하고 있다.

▲ 리모델링 된 ‘막사 블록’(Barrack Block) 건물에 입주한 갤러리 ‘오라-오라’(Ora-Ora)
▲ 리모델링 된 ‘막사 블록’(Barrack Block) 건물에 입주한 갤러리 ‘오라-오라’(Ora-Ora)

재활성화 과정에서 새롭게 건설된 JC 컨템포러리와 JC 큐브는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리모델링을 맡았던 세계적인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뫼몽이 설계했다. JC 컨템포러리에 마련된 전시공간에서는 한해 5~8회 기획 전시가 열려 홍콩의 예술과 문화 담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밖에도 포트폴리오 공모 등을 통해 작가를 선정하는 ‘오픈콜’ 프로그램과 국내외 큐레이터 협업 전시, 지역 큐레이터 육성 프로그램 등도 진행된다. JC 큐브에는 영화 등 미디어 상영과 컨퍼런스, 세미나 등 교육 활동을 위한 강당과 야외 공연 공간 ‘Laundry Step’이 있다.

이 밖에도 기혼 경사와 독신 검사관 기숙사 건물은 예술가들의 레지던시 공간으로, 사무실 공간이던 건물 ‘A홀’은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타이쿤 재활성화 과정에서 새롭게 건축된 JC 컨템포러리.
▲ 타이쿤 재활성화 과정에서 새롭게 건축된 JC 컨템포러리.

◇장소 역사성 잊지 않기 위한 노력

타이쿤에는 공간이 가진 역사를 간직하기 위한 공간들이 마련돼 있다. 타이쿤의 높은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건물 ‘D홀’에는 1862년 조성된 방사형 감옥 일부가 보존돼 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살펴볼 수 있는 감옥에는 재소자들이 사용했던 2층 침대와 집기류 등 당시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1910년에 지어져 교도소로 사용됐던 ‘B홀’ 건물에서도 당시 최고 보완 등급으로 지정됐던 감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타이쿤을 탐방하고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홍콩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상설 전시관을 마련하고, 현장과 관련된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타이쿤 재활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식민지 시절 건설된 16개의 건물에서 일했던 근로자와 인근 주민 등의 구술을 기록하는 ‘구전 역사 수집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타이쿤은 2019년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 보존상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타이쿤 관계자는 “타이쿤은 유산을 리모델링해 문화공간으로 재활성화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다”면서 “홍콩의 역사가 녹아있는 공간인 만큼 이곳을 매개로 예술 활동이 이어지고, 문화가 꽃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콩=서정혜기자 sjh3783@ksilbo.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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