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술 유출 관련 처벌 조항 없어
최장 징역 6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한시바삐 법 개정, 경제안보 지켜야

▲ 이상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울산 북구)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기술 패권전쟁이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다. 산업스파이의 기술 유출 시도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일 또한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안보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정보 쟁탈전이 격화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최근 드러난 대형 기술 유출 사건은 중국에서의 ‘삼성 복제 공장’ 사건이다. 지난 6월 수원지검은 전 삼성전자 상무이사였던 최 모씨를 삼성전자 공장 설계도를 바탕으로 중국 시안에 ‘복제 공장’을 세우려 한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최씨는 국내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삼성, 하이닉스 출신 반도체 인재 200여 명에게 2~3배 연봉을 제안해 대거 영입한 후 이들을 통해 삼성 시안 공장 설계도를 빼돌렸다. 뿐만 아니라, 영입한 인재들을 통해 반도체 클린룸 최적화 기술, 공정배치도, 핵심 반도체 공정 기술 등 최대 수조 원의 가치를 지닌 첨단 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중국에 통째로 넘긴 핵심 기술은 7년에 달하는 한-중간 기술 격차를 뒤집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 로도 불릴 만큼 결정적인 것이었다. 정보당국에서는 최씨의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주요 투자자로 현지 공장 허가를 내주며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 때문이다.

외국 정부의 주도 아래 국내 정보를 수집하고 조직적으로 첨단 기술을 유출하는 행위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번연히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서울 송파구 중식당 ‘동방명주’를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비밀경찰서’ 국내 거점으로 지목하고 실체 파악에 나섰다. 정보 당국은 ‘동방명주’가 사실상 중국 정부의 ‘비밀경찰’ 역할을 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현행법상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어 소유주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는 올 초,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뉴욕 맨해튼에서 중국 비밀경찰서를 마라탕집으로 위장 영업한 혐의로 운영자를 체포, 기소한 것과 대조된다.

중국 또한 지난 7월부터 국가기밀을 유출하는 행위를 간첩 행위에 포함하는 ‘반간첩법’을 개정, 시행하고 있다. 당국에 적발된 ‘미국 간첩’을 연이어 공개하고 일본 기업 직원을 간첩 혐의로 체포한 성과를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선전 중이다. 대만 정부는 중국 산업스파이 활동 증가와 관련해 반도체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해 국가핵심기술 유출시 최대 12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것으로 작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했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관련 처벌 조항 부재로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적용해 처벌할 수 밖에 없다. 이마저도 낮은 양형기준으로 대부분의 기술유출 행위가 무죄나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다. 가중처벌도 최장 징역 6년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이에 필자는 올해 초, ‘적국(북한)’은 물론 ‘외국’에 국가 기밀을 제공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1953년도에 제정된 전시형법으로, 국가 안보의 범위를 ‘적국’으로만 한정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적국은 북한 뿐이다. ‘동방명주’같이 외국 경찰이 국내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사태가 다시 벌어져도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 정부의 지령을 받고 국가핵심기술을 팔아넘기는 행위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해 엄중한 처벌이 가능해진다.

현재 형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서 심사 중이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심사를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개정안이 이번에 통과되지 않으면 예산국회와 총선 일정으로 인해 사실상 21대 국회에서는 처리가 어렵다. 산업기술유출은 기업의 존망을 결정 지을만큼 치명적이고, 나아가 국가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한시 빨리 관련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21대 국회로서는 이번 소위 논의가 경제안보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이상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울산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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