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용 울산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분석 담당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卑屬) 살해’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만하면 다시금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울산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지만, 2023년 올해에만 하더라도 벌써 여러 건의 비속 살해가 발생했다.

필자는 울산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근무하는 경찰관으로서 ‘학생이 연락도 없이 학교를 나오지 않았는데 보호자도 연락이 안 된다’라는 신고나 ‘가족 모두가 연락 두절’이라는 신고가 접수될 때마다 온 신경이 곤두선다.

올해 11월 어느 저녁 어떤 남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112신고를 했다. “아들하고 며느리 그리고 손자가 오늘 오전부터 모두 휴대폰이 꺼져있고 하루종일 연락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신고 접수 즉시 가족들의 위치 추적을 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주소지인 경기남부경찰청에 공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주소지를 찾아간 경찰관들이 아파트 초인종을 눌러도 답이 없고 내부에 전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통보를 해왔고 우려가 현실이 될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잠시 뒤 휴대폰이 꺼진 최종 위치가 인천시 부근으로 확인되었고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출국할 수 있음에 착안 법무부를 통해 출입국 사실을 조회해보니 일가족이 해외로 여행을 나가 연락이 안 된 것이고 안전에 아무 이상 없는 것이 확인되었다.

최종적으로 가족들의 안전을 확인하기까지 계속 긴장을 해야만 했지만, 이처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는 사건은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일가족 사망 사건의 경우 자녀와 배우자를 먼저 살해하고 마지막에 자신도 세상을 등지는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이 대부분이다.

이는 각자가 자살하려고 마음을 먹고 극단적 선택을 함께하는 ‘동반 자살’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들이 낳고 키웠다는 이유로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비뚤어진 소유욕이 아직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 같은 자녀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으며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의 자료를 보면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2022년 총 50명으로 2018년 28명에서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한 사망 피해 아동의 가족 유형이 친부모 가정이 48%로 가장 높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제는 자녀 살해를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인한 일가족 자살이 아닌 아동학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며 위기 가정의 아동들을 적극 발굴해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존엄한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회 인식 전환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가족 공동체를 붕괴하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점에서 미성년자인 비속에 대한 살해도 엄중하게 다스려 당연히 가중처벌하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도 필요하다.

직무상 아동학대를 인지할 가능성 높은 직군의 사람들에게 법률로 정한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주위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아동학대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기에 의심스러운 경우 바로 112신고를 당부드린다.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아이들의 생계와 미래가 걱정된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지금은 아동복지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에게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처지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부모가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도 용납되기 어렵다.

그 어떤 이유도 부모에 의해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천지용 울산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분석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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