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 경기침체 등으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소상공인·중소기업계에 중대재해처벌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정부의 무능과 민생을 내팽개친 정치권의 무한대립 탓에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적용 유예에 실패했다. 법 적용 유예를 호소한 전국 소상공과 중소기업의 간절한 외침은 정치권의 ‘극단적 파당 정치’에 매몰돼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됐다.

국회에서 극적인 타결을 보지 못한다면 중대재해법은 오는 27일부터 5인이상 50인 미만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된다. 울산의 경우 제조업 비중이 압도적인 전국 1위(2022년 65.1%)로, 산업 재해 사고 위험성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지역 중소기업 대부분 안전보건 인력과 비용 부담 등으로 안전보건 역량이 취약해 엄격한 법 적용시 경영활동 위축이 우려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서민경제의 중심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아픔을 보듬는 민생정치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야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을 처리에 실패했다.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의 2년 유예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패싱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책임 소재를 놓고 ‘네 탓 공방’만 벌리는 모양새다. 민생은 뒷전이고 극단적 내로남불 대결양상으로 치닫는 정치권이다.

울산지역에선 1만2700여 사업장이 추가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게 된다. 제조 중소기업은 물론 음식점, 도소매업 등 서비스업과 건설업 현장에서 중대재해 발생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가해진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법규 위반으로 처벌 시 존폐의 갈림길에 설 수도 있다.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줄폐업’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다.

법은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 타당성과 수용성을 갖춰야 한다. 자본과 인력을 갖춘 거대 대기업과 고용근로자 몇명 뿐인 중소기업에게 같은 안전보건 관리 역량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 일이다. 같은 법률을 잣대로 소규모 사업장까지 처벌을 강제하는 것은 악법이 될 소지가 더 크다.

중대재해법 역시 근로자의 안전과 함께 근로자들의 일터를 함께 지키기 위한 법이다. 중소 사업장들이 스스로 안전·보건 개선방안을 마련한 이후에 강화된 중대재해법을 적용해도 늦지 않다. 중소기업이 숨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머리를 맞대 영세 중소기업을 살리는 방안을 찾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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