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북일기>(赴北日記)
부자 무신 박계숙-박취문
40년 시차두고 쓴 일기모음
꼼꼼한 기록 역사가치 높아

▲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한 울산의 박계숙과 그의 아들 박취문이 군관으로 일하며 쓴 일기를 한권으로 만든 '부북일기'.
▲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한 울산의 박계숙과 그의 아들 박취문이 군관으로 일하며 쓴 일기를 한권으로 만든 '부북일기'.
<부북일기>(赴北日記)는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한 울산의 박계숙(朴繼叔·1569~1646)과 그의 아들 박취문(朴就文·1627~1670)이 약 40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1년간씩 최전방지인 함경도 회령에서 초급장교에 해당하는 군관으로 부방(赴防·국경지대에 파견되어 방위 업무를 맡은 일)하면서 쓴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후대에 남긴 것이다. 박계숙의 일기는 선조 38년(1605) 10월15일 울산에서 출발해 약 1년간 함경도 회령에서 부방생활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선조 40년(1607) 1월1일까지이며, 박취문 일기는 인조 22년(1644) 12월9일 울산에서 출발한 때부터 함경도 병영에서 부방생활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인조 24년(1646) 4월4일까지의 일기다. 일기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총 79장 1책으로 부자의 일기가 합본돼 있는데, 박계숙의 일기가 24장, 박취문의 일기가 55장으로 구성돼 있다.

<부북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각 병영 단위의 중요한 훈련은 습진(習陣)이었다. 박계숙의 일기에는 진법훈련을 했다는 사실이 네 차례 나온다. 2월과 9월에 각각 두 차례씩 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진법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빠진 자는 출신군관일지라도 엄한 문책을 받아야 했다. 박계숙도 무단으로 습진에 불참했다가 참사로부터 곤장을 맞은 바 있었다.

<부북일기>에 나타나는 병영생활에서 가장 자세하고도 풍부하게 기록돼 있어 눈길을 끄는 것은 활쏘기다. 활은 총이 나온 이후에도 무인의 무예와 힘을 가늠하는 수단, 체력을 단련하는 수단, 친목을 다지는 놀이의 수단 등으로 계속 기록돼 있다. 군관들을 위시한 무인들은 거의 매일 활쏘기를 하고 박계숙과 박취문도 별다른 업무가 없는 한 거의 매일 활을 쏜 듯하고, 또한 그 사실을 일기에 꼼꼼하게 써 놓았다.

일기는 울산박씨 후손인 박인우(朴寅又)씨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박홍춘(朴弘春·기증자 13대조)의 장도(長刀)와 함께 울산박물관에 기증했고, 울산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부북일기>는 여러 가치 측면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높고, 조선시대 무관들의 생활상을 살펴보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다. 또한 경상도에서 함경도 회령에 이르는 여정이 잘 기록돼 당시 교통로 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군대 생활은 물론 일상의 소소한 것까지 솔직하게 기록돼 조선시대 부방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게 해주는 역사 기록물이다. 조선왕조는 문신 우위의 사회였기 때문에 같은 양반신분이라 하더라도 무신에 관한 자료는 문신의 그 것에 비해 매우 영세한 편이다. 무신의 부방일기인 <부북일기>는 무신이 남긴 일기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기 충분하다. 무신의 일기라는 점에서 희소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약 40년간의 시차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기록했다는 점에서 아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김대성 울산박물관 전시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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