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잠시 두드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밤에 불빛이 없는 창문을 두드리게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 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

이웃이거니 생각하고
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는데
조금 후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의 주인은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 중략 -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내가 살던 시간 앞에 와서 꿈처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방 곳곳에 남아 있는 얼룩이
그를 어룽어룽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이 방 창문에서 날린 풍선 하나가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어떤 방을 떠나기 전, 언젠가 벽에 써놓고 떠난
자욱한 문장 하나 내 눈의 지하에
붉은 열을 내려보내는 밤,
나도 유령처럼 오래전 나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지난 시간은 늘 그리움으로 남는 법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셋방살이를 하다 보면 이전에 살던 사람의 자취를 만날 때가 있다. 금 간 창문에 꼼꼼히 오려 붙인 종이테이프나, 문설주에 그어놓은 아이들의 키 높이. 도배나 장판을 갈아도 숨길 수 없는 남루는 내가 그 방을 떠날 때도 거기에 무언가 더해져 무릎 위의 흉터처럼 남았을 것이다.

이제 아파트 거실에서 손깍지를 하고 누워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색종이로 만든 모빌과 벽에 붙인 한글 공부, 다후다 이불 위에서 네 활개를 벌리고 잠든 아이들을 창문 너머로 바라본다.

고단했지만 젊었기에 희망의 풍선 몇 개쯤 띄워 놓았던. 지난 시간은 늘 그리움으로 남는 법이어서 우리는 그 시간 앞에서 여직 서성거리는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누운 방은 이미 누군가가, 그 누군가의 앞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그의 역사를 지었다 허물고 떠난 것일 테고, 헐린 집 앞에서 추억을 더듬듯 우리는 가끔 그 흔적을,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찾아 이리저리 궁굴려 보는 것이다. 송은숙 시인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