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가대표팀 감독 리더십 논란 이어
권력으로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막는
사회 지도층의 안하무인식 태도 도마에

▲ 최진숙 UNIST 교수 언어인류학

“어때요, 참 쉽죠?”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의 화가 밥 로스가 진행한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국내에서 EBS를 통해 더빙 방영되었을 때 이 말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영어로는 “That easy”라고 하는 말을 번역한 것으로 이것을 직역하면 “이렇게 쉽다”라는 뜻이다. 이는 그림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들에게 “아주 어렵지 않으니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직접 한 번 해보세요”라고 독려하는 의도로 한 말이었다.

밥 로스가 미리 스케치도 하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그리더니만 30여 분 만에 풍경화 한 폭이 뚝딱 만들어지곤 했다. 나이프에 유화 물감을 묻혀 몇 번 쓱쓱 긁어내리면 눈 덮인 산이 되고, 거울 같은 호수가 된다. 붓으로 툭툭 쳐내면 푸른 잎이 풍성한 나무가 되던 그림을 그렸던 장면들이 기억난다. 밥 로스가 색칠하는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 정말 쉽네. 나도 쓱쓱 긋기만 하면 저렇게 유화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되기도 했다.

요즘에는 이 말의 의미가 다소 바뀌어 아주 높은 수준에 오른 전문가가 자기한테만 쉽고 남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기술을 보여주고는 “어때요, 참 쉽죠?”라고 마지막에 한 마디 덧붙이며, 지금 막 배우기 시작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고문하는 뉘앙스를 전달하기도 한다. 어떤 분야의 천재 혹은 능력자들이 뭔가를 해내고는 초보자들에게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하느냐”라는 의미의 말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애초에 천재들은 자기가 해내는 일이 남들에게도 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선수 메시나 호나우두가 축구 감독이라고 상상해보자. 현란한 드리블로 대여섯 명의 수비를 제치고 공을 몰고 가더니만 감아 차는 슛을 날려 골키퍼의 키를 살짝 넘는 골을 넣는다. 그리고는 ‘그냥 공 몰고 가다가 차면 골 들어갑니다. 어때요, 참 쉽죠?’라고 하면, 이를 보고 있던 선수들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최근 국내 축구팬들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공분할 일이 있었다. 현재 축구 국가대표팀은 여러 유럽 프로 축구 리그에서 이름난 선수들이 포함돼 있어 소위 ‘황금세대’ 축구선수들로 구성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을 데리고 아시안컵 결승까지 가기는커녕, 요르단에 참패한 4강전에서는 경기력 자체도 형편없었다. 대중은 혹시 클린스만 감독이 과거에 워낙 뛰어난 스트라이커였기에,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하며 너무 쉽게 생각한 나머지 제대로 감독 노릇을 못 한 건 아닐까 의혹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문제는 실력이 너무 좋아서 감독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하는’ 것이었다.

결국 4강에서의 탈락은 선수들이 아니라 감독의 문제에서 귀인한다는 데 모두의 의견이 모아지는 가운데, 그 감독의 태도 또한 지적되었다. 4강에서 탈락한 경기 후 모두가 침울해하거나 심지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와중에 시도 때도 없이 미소를 남발하는데다가 한국에 도착 후 기자 회견에서는 ‘왜 비난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패배에 대한 반성과 분석도 없이 다음 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특히 지금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예선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인데 말이다. 게다가 최근 선수들 간 불화설까지 나오고 있는 와중에 패배의 원인을 선수들의 갈등으로 돌리는 무책임함까지 보여주었다. 지치고 힘들고 긴장된 선수들을 다독여주거나, 잘못했을 때 한마디 해줄 수 있는 리더도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축구 감독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으리라는 짐작은 간다.

축구팀만이 아니라 다른 조직에서도 리더로서 조직을 이끄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런데 조직 운영을 하는 아주 쉬운 방법을 알게 되어 독자들에게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리더가 지나가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은 잘 안 들린 것으로 하고, 누군가로부터 받은 가방도 못 본 것으로 하며, 또 무엇 보다도 리더 앞에서 아무 말도 떠들지 못하게 하시라. 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번쩍 들어 밖으로 내보내면 된다. 이처럼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다 막을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리더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어때요, 참 쉽죠?

최진숙 UNIST 교수 언어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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